본문으로 바로가기
← 독립운동가 목록으로

李用鎬

用鎬

1874. 12. 18 ~ 1952. 7. 6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用鎬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추천 질문을 누르거나, 궁금한 내용을 직접 물어보세요.

0/200자
경북 안동(安東)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안동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안동군 예안면
  • · 도산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74년 12월 18일 경상북도 안동군(安東郡) 도산면(陶山面) 토계동(土溪洞)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진성(眞城)이다. 1919년 3월 17일 안동군 예안면(禮安面) 만세시위에 참여하고, 다음 날 18일에는 도산면 토계동에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1919년 3월 13일 이상동(李相東)의 1인 만세시위가 일어나면서 안동군에서도 만세운동의 분위기가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다음 날 14일 도산공립보동학교 3학년 이기호(李琦鎬)가 자신의 집으로 찾아오자 학생들을 모아서 시위를 펼치라고 하며 만세운동을 독려하기도 하였다. 안동군의 만세운동을 주시하던 중, 신상면(申相冕)·이시교(李時敎)·이광호(李光澔) 등이 주동이 되어 비밀리에 3월 17일 예안면 장날에 만세운동을 계획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같은 마을에 사는 사촌 동생 이극호(李極鎬)와 함께 동참하기로 약속하였다. 3월 17일 거사 당일 이극호와 함께 예안면 장터로 향하였다. 장터에는 만세운동 정보를 탐지한 일제 경찰이 경계를 서고 있는 가운데 장꾼과 주민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이극호와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후 3시 30분경 갑자기 면사무소 뒤편 선성산(宣城山)에서 ‘대한독립만세’ 소리가 들려 왔다. 30여 명의 군중이 선성산에 올라가 일본이 세운 「어대전기념비(御大典紀念碑)」를 쓰러뜨리고 ‘독립만세’를 부른 것이었다. 이들의 만세소리에 장터에서도 30명 정도로 구성된 시위대가 세 곳에서 동시에 ‘독립만세’를 부르며 장터 중앙으로 몰려 나왔다. 이때 시위대에 합류하여 ‘독립만세’를 외쳤다. 장꾼과 주민들도 합류하여 시위 분위가 고조되자 다른 시위대와 함께 예안면 경찰관주재소로 향하였다. 그러나 미리 장터에 나와서 경계를 서고 있던 경찰이 시위대 앞을 막고 총칼로 위협하였다. 경찰의 위협에도 행진을 계속하였으나 주도 인물을 비롯한 15명이 체포되면서 부득이 해산하게 되었다. 시위대가 해산된 이후에도 다른 대부분의 사람들과 장터를 떠나지 않고 있었다. 오후 6시경 군중과 함께 다시 모여 경찰관주재소로 향하였다. ‘독립만세’를 외치며 구속자 석방을 요구하였다. 1,500여 명의 시위대와 함께 주재소 앞에서 수비병을 뚫고 구속 탈환을 위하여 돌과 기왓장을 던지며 주재소로 진입하였다. 이에 사태의 급박함을 감지한 경찰이 수비대를 동원하여 무력으로 위협하며 시위대를 진압하였다. 이 과정에서 25명이 체포되면서 시위대는 해산하고 만세시위도 끝나게 되었다. 이후 저녁 9시경 이극호와 함께 도산면 토계동으로 귀가하던 중 도로에서 이기호를 만나게 된다. 먼저 이극호가 이기호에게 예안면 장터의 만세운동 소식을 전하며 내일 학생들을 모아 만세운동을 펼칠 것을 제의하였다. 이때 이극호의 의견에 동참하며 적극적으로 독려하였고, 주민들과 함께 독립만세를 부르겠다고 약속하고 헤어졌다. 다음 날 18일 아침 이극호와 함께 토계동 동민들을 규합하여 마을 앞 개울가로 향하였다. 개울가에 있는 큰 나무 아래에 동민들이 모이자 ‘독립만세’를 선창하였고, 이어서 마을 주민들도 ‘독립만세’를 외치며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그리고 같은 시각 약속한대로 이기호도 도산공립보통학교 교정에서 학생 30여 명을 모아 만세운동을 펼쳤다. 만세소리에 경찰이 급히 출동하여 다른 주도 인물들과 함께 붙잡혔다. 일제의 조사 과정을 거쳐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5월 26일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2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6월 24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다시 상고하였지만, 그해 9월 4일 고등법원에서 최종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정상우⋮

국어사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