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 독립운동가 목록으로

李順玉

順玉

미상 ~ 1925. 9. 10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順玉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추천 질문을 누르거나, 궁금한 내용을 직접 물어보세요.

0/200자
전북 전주(全州)의병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북도 전주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관련 단체

  • · 유치복 의병부대
  • · 유지명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국장(1999)

관련 사건

  • · 후기의병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9) 전라북도 전주시(全州市) 비봉면(飛鳳面) 소농리(所農里) 출신이다. 자료의 한계로 출생일자는 확인할 수 없다. 1907년 친형 이원옥(李元玉)과 함께 외삼촌 유치복(柳致福)의 의병부대에 참여하였고, 유지명(柳志明) 의병부대에도 소속되어 항일투쟁을 펼쳤다. 1905년 을사늑약 체결 이후 국권 상실의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항일단체들이 결성되었다. 1906년 전라남도 영광(靈光)에서는 기삼연(奇參衍)·김용구(金容球) 등을 비롯한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의 문인을 중심으로 일심계가 조직되었다. 이어 1907년 고종의 강제 퇴위와 한일신협약(정미7조약) 이후 대한제국 군대 해산 등으로 전국적으로 다시 의병이 일어났다. 1907년 일심계의 주도로 항일의병이 조직되었으며, 같은 해 10월 30일 기삼연을 중심으로 영광의 김용구, 나주(羅州)의 김준(金準)과 김율(金聿), 장성(長城)의 이철형(李哲衡), 함평(咸平)의 이남규(李南奎) 등이 합세하여 호남창의회맹소(湖南倡義會盟所)가 결성되었다. 하지만 일제의 대대적인 진압 작전으로 기삼연이 사망한 이후, 심남일(沈南一)·안규홍(安奎洪) 등으로 대표되는 소규모 의병부대로 분리되어 각 지역에서 활발하게 유격전을 전개하였다. 이때 형과 함께 유치복이 장성에서 의병부대를 결성할 때 참여하였다. 이후 전북 고산(高山, 현 전라북도 완주군) 출신의 유지명이 ‘삼남의병대장(三南義兵大將)’ 직인이 찍힌 격문을 게시하며 의병을 결집하자, 유치복 의병부대와 함께 합류하였다. 유지명은 농민출신으로 스스로 ‘창의대장(倡義大將)’이라 칭하며 수백명의 의병을 결집한 뒤, 군자금과 군수품을 확보하기 위해 호남 부호들에게 ‘삼남의병대장(三南義兵大將)’의 직인이 찍힌 문서를 보내 수백석의 군량을 징발하였다. 이후 전북 용담(龍潭, 현 전라북도 진안군)·고산과 충남 은진(恩津, 현 충청남도 논산시) 등의 지역에서 일본군과 전투를 전개하였고, 많은 전과를 올렸다. 하지만 일제가 대규모 군대를 동원하여 이른바 ‘남한대토벌작전’으로 이 지역 의병에 대한 탄압을 강화하자, 상당한 타격을 받고 위축되었다. 결국 유치복 의병장이 일본군에게 체포되어 사망하자, 의병부대는 해산하였다. 이후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은신하다가, 밀정의 밀고로 붙잡혔다. 일자미상일에 대구지방법원에서 징역 15년을 받고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겪다가, 11년만인 1925년 가출옥하였다. 그러나 이미 친형 이원옥은 옥고를 겪다가 사망하였고, 고향의 살던 집도 이미 부호의 논이 되어 있는 등 집안이 풍비박산되었다. 결국 같은 해 9월 10일 일제의 만행에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9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홍동현⋮

국어사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