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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完甫

完甫

1856 ~ 1909. 3.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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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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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회양(淮陽)의병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강원도 회양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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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김보삼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관련 사건

  • · 후기의병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1) 강원도 회양군(淮陽郡) 안풍면(安豊面) 출신이다. 1908년 판결문에 당시 나이가 53세로 기록되어 있어 1856년생으로 추정된다. 1907년부터 김보삼(金甫三) 의병부대에서 항일활동을 전개하였다. 1907년 고종 강제 퇴위와 대한제국 군대 강제 해산 등으로 국권상실이 현실화되자 전국에서 다시 의병이 일어나 국권회복운동을 전개하였다. 특히 군대 해산 이후 해산 군인들이 대거 의병부대에 참여하고, 일반 평민들도 의병부대를 결성하여 일본 군경과 항일투쟁을 펼쳤다. 강원도에서의 의병활동은 1907년 8월 민긍호(閔肯鎬)가 원주(原州)에서 의병부대를 일으키며 시작되었고, 춘천(春川)·강릉(江陵) 등 각 지역으로 확산되었다. 김보삼은 민긍호 의병부대에 참여한 뒤 독자적으로 의병부대를 조직하고 본대와 연대하면서 유격전을 통해 일본군을 타격하였다. 이때 김보삼 의병부대에 참여해 김구학(金龜鶴)·김순옥(金順玉) 등과 함께 항일활동을 전개하였다. 1907년 10월 17일 밤 김보삼 의병장의 지휘 아래 동료 의병 수십 명과 함께 강원도 흡곡군(歙谷郡) 신읍(新邑)과 인근 마을에 들어가 순사분파소를 기습해 순사용 검 1자루와 동복 1벌을 징발하였다. 이어서 같은 동네에 있는 일본어학교를 공격해 교사와 우편배달부 등 2명을 처단하고 양총 1정을 모집하였다. 이어서 10월 20일 오전 7시경 김구학을 포함한 동료 의병들과 함께 통천군(通川郡) 통천읍(通川邑) 등 부근 마을에 들어갔으나, 일본 순사와 수비병의 반격을 받고 퇴각하였다. 이후 붙잡혀 조사를 받고 재판에 회부되었다. 이 일로 1908년 11월 17일 경성지방재판소에서 이른바 내란죄로 교형(絞刑)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으나, 1909년 1월 19일 경성공소원에서 기각되었다. 다시 상고하였지만, 같은 해 2월 6일 대심원에서 최종 기각되었다. 옥고를 겪다가 1909년 3월 9일 경성감옥에서 김구학·김순옥과 함께 형 집행으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노상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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