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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用西

用西

1868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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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用西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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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고산(高山)의병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북도 고산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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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이용서 의병부대
  • · 신보현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족장(2015)

관련 사건

  • · 후기의병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5) 전라북도 고산군(高山郡, 현 전북 완주군) 운동하면(雲東下面) 용복동 출신이다. 1908년 작성된 수형인명부에 당시 나이가 41세로 기록되어 있어, 1868년생으로 추정된다. 이명은 이용서(李龍西)이다. 1907년부터 뜻을 세워 의병활동에 동참하였다. 같은 해 고산에서 활동하다가 붙잡혀 11월 22일 이른바 내란죄로 태(笞) 60도(度)를 받았다. 그리고 항일활동을 지속하다가 1908년 다시 붙잡혀, 11월 9일 광주지방재판소에서 이른바 폭동죄로 태(笞) 100도(度)를 받고 고초를 겪었다. 1909년 3월 8일 직접 의병부대를 일으킨 이후, 전북 부안(扶安) 출신의 김낙선(金樂先) 등 무장한 약 30명의 부하들과 함께 전북 고부(古阜)·태인(泰仁)·부안 일대에서 활약하였다. 같은 해 4월 5일 밤에는 충남 정산(定山) 출신의 승려 최종현(崔宗賢) 등 무장한 의병 10여 명과 더불어 고부군 남북면(南北面) 진장리(鎭長里) 은정필(殷正必)의 집에서 당목 1필을 징수하였다. 그리고 4월 23일 경에는 부안군 봉덕리(鳳德里)에 사는 김(金) 오위장(五衛將)에게 육혈포 제공을 요구하였으나, 없다고 하자 80냥을 군자금으로 모집하였다. 그 해 8월 8일에는 일본 기병대의 습격으로 다리에 부상을 입고 귀가했다가 다시 합류한 김낙선을 선봉장(先鋒將)에 임명하였다. 그리고 김낙선에게 부하 12명과 함께 고부·태인·정읍(井邑)·부안 일대에서 활동하도록 하였다. 1909년 말에는 신보현(申甫鉉) 의병부대에 합류해 부장(副將)으로 활동하면서, 항일투쟁을 이어간 것으로 보인다. 부하 10여 명과 함께 전북 순창(淳昌)·고부·태인·부안 일대에서 항일투쟁을 펼쳤다. 함께 활동하던 부하 김낙선 등이 1909년 11월 1일 김제군(金堤郡) 홍산면(洪山面) 내리(內里)에서 헌병대에 체포되었고, 같은 해 12월 신보현 의병장도 붙잡혔다. 이후 독자적으로 활동을 계속하면서, 1910년 중반까지 고부·태인·부안·만경(萬頃)·김제 일대에서 군자금 모집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하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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