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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寅光

寅光

1878. 7. 6 ~ 1934. 9.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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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寅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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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고령(高靈)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고령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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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건국포장(1995)

관련 사건

  • · 파리장서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1995) 1878년 7월 6일 경상북도 고령군(高靈郡) 고령면(高靈面) 내상동(內上洞)에서 태어났다. 이두훈(李斗勳)과 곽종석(郭鍾錫)의 문하에서 학문을 익혔다. 1919년 3월 곽종석과 김복한(金福漢)·김창숙(金昌淑) 등이 영남·호남·충청 지역의 중장년층 유림(儒林)을 조직해 벌인 파리장서사건(巴里長書事件)에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스승인 곽종석과 유림 지도층으로부터 파리강화회의에 대한 내용과 전망, 그리고 일제가 유림의 명의를 도용해 벌인 독립불원서(獨立不願書) 사건에 대해 알게 되었다. 아울러 이로 인한 서울 유림의 동태를 전해 들으며 파리강화회의에 한국 독립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청원서를 보내 국제 여론에 호소하려는 계획을 듣고, 이때 여기에 동참하였다. 장석영(張錫英)·곽종석 등의 손을 거쳐 일본의 식민통치를 규탄하는 파리장서 초안이 완성되자, 137명의 유림과 함께 연명(連名)의 방식으로 서명하였다. 1919년 3월 말 파리장서는 김창숙을 통해 해외로 송달되었다. 1919년 4월 2일 경북 성주군(星州郡)에서 대규모 만세운동이 벌어지고 파리장서에 서명한 유림 중 일부가 체포되었다. 그 결과 장서가 파리로 보내진 사실이 일제 경찰에 알려져 대규모 검거가 일어났다. 특히 서명자가 다수 밀집한 성주지역에서 4월 5일 송준필(宋浚弼), 4월 8일 장석영·이덕후(李德厚)·성대식(成大湜), 4월 12일 송회근(宋晦根) 등이 붙잡혔다. 이 과정에서 일제경찰에게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붙잡혀서 4월 15일 대구지방법원 검사국에 송치되었다. 그해 4월 30일 대구지방법원에서 기소유예(起訴猶豫)로 풀려났다. 이후 1922년 8월 고령지역 소비자의 권익 보호를 목적으로 설립된 고령소비조합(高靈消費組合)의 이사로 선출되었으며, 1928년에는 고령 내산서당(乃山書堂)에서 스승 이두훈을 기리기 위해 13권 7책의 홍와문집(弘窩文集)을 발행하기도 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이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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