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 독립운동가 목록으로

李章奎

章奎

1891. 10. 19 ~ 1965. 8. 12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章奎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추천 질문을 누르거나, 궁금한 내용을 직접 물어보세요.

0/200자
충남 청양(靑陽)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남도 청양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4)

관련 사건

  • · 청양군 정산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4) 1891년 10월 19일 충청남도 청양군(靑陽郡) 목면(木面) 지곡리(池谷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청양군 정산면(定山面)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1919년 4월 5~6일까지 이틀에 걸쳐 일어난 정산면 정산시장 만세시위는 이 지역의 유림이 주도하였는데, 5일의 만세시위에서 정산향교(定山鄕校) 직원(直員) 권흥규(權興圭)의 사망을 계기로 목면 일대까지 확대되어 대규모로 전개되었다. 정산면 백곡리(白谷里)의 유림 홍범섭(洪梵燮)·임의재(任毅宰)·윤석희(尹錫禧)·홍세표(洪世杓)·박상종(朴商鍾) 등은 서정리(西亭里) 정산시장의 장날인 4월 5일 장터로 나가 오후 3시경부터 주민들에게 태극기를 나누어 주고 만세운동을 시작하였다. 만세시위가 격렬해지자, 일제 헌병은 해산을 종용하면서 군중을 향해 발포하였다. 이 과정에서 선두에서 시위대를 이끌던 권흥규가 총탄에 맞아 현장에서 사망하였고, 이로 인해 이날의 시위는 해산되었다. 권흥규의 친인척과 전날 만세시위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다음 날인 4월 6일 아침 권흥규의 시신을 헌병주재소로부터 인수하여 목면 안심리(安心里) 소재 고인의 자택으로 운구하기 시작하였다. 운구행렬에는 ‘배일사권공지구(排日士權公之柩)’라는 명정(銘旌)과 많은 만장(輓丈)이 줄을 이었다. 운구가 지곡리를 경유할 즈음, 전날에 있었던 정산시장의 만세시위와 권흥규의 사망 소식을 접하고 분노한 마을 주민들과 함께 운구행렬에 참여하였다. 운구가 지나는 길목마다 주민들이 참여하여 운구행렬의 규모는 1,000여 명으로 확대되었다. 운구행렬 속에서 나눠주는 태극기를 받아 흔들면서 ‘조선독립만세’를 연창하며 안심리를 향해 행진하였다. 운구행렬이 대규모 만세시위로 발전하자, 일제는 정산의 헌병 및 공주(公州) 주재의 헌병까지 정산으로 증파하였다. 공주에서 출동하여 목면 언덕에 매복하고 있던 일제 헌병들은 독립만세를 외치며 행진하는 운구행렬을 마주치자마자 곧바로 발포하였고, 이 때문에 현장에서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이날의 만세시위 직후 일제 헌병에게 붙잡혀 청양헌병분견소에 구금되었다. 1919년 4월 22일 만세시위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다는 이유로 이른바 보안법 위반을 이유로 태(笞) 90도(度)의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4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국어사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