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 독립운동가 목록으로

李容晦

容晦

1892. 9. 20 ~ 1959. 2. 2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容晦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추천 질문을 누르거나, 궁금한 내용을 직접 물어보세요.

0/200자
경북 상주(尙州)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상주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1919년 4월 상주군 화북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92년 9월 20일 경상북도 상주군(尙州郡) 화북면(化北面) 입석리(立石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8일 상주군 화북면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1919년 3월 1일 서울 등 7개 도시에서 시작된 만세운동은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경상북도 상주군에서는 3월 23일 상주면 장날에 한암회(韓岩回)·강용석(姜龍錫) 등 상주지역 출신 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대대적인 만세운동이 일어났으며 이는 큰 파장을 일으켰다. 상주면 만세운동이 일어났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일제의 감시도 삼엄하던 때에 평소 친분이 두터운 이웃 마을 장암리(壯岩里) 구장(區長) 이성범(李聖範)이 찾아왔다. 이성범은 전국의 만세운동 소식을 알리며 마을에서도 만세시위를 일으키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이야기를 하였다. 그 자리에는 그 외에도 김재갑(金在甲)·홍종흠(洪鍾欽) 등이 같이 있었는데 이들은 모두 이성범의 의거 계획에 찬성하며 뜻을 하나로 모았다. 네 사람은 비밀리에 여러 차례 만나서 만세운동을 논의하면서 준비를 구체적으로 하게 되었다. 협의를 거듭한 결과 만세운동 날짜를 4월 8일로 정하고, 장소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터가 아닌 마을에서 가까운 속리산(俗離山) 정상부근에 있는 문장대(文藏臺)에서 펼치기로 결정하였다. 4월 4일에는 권고문을 작성하여 면내에 있는 각처에 보내 많은 사람들이 만세운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만세운동에 쓰일 태극기 2기도 직접 제작하였다. 다른 주도자들과 함께 마을 청년들을 만나 나라를 다시 찾기 위해서는 청년들의 힘이 필요하며, 우리 손으로 일본을 몰아내고 조국의 독립을 이루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그리고 만세를 부르며 일어나야 한다고 설득하여 이들의 동참을 얻게 되었다. 주도자들의 이러한 노력으로 100여 명의 사람들을 규합할 수 있었다. 4월 8일 거사 당일 오후 2시경 마을 주민 100여 명과 함께 문장대(文藏臺)에 올라갔다. 이들은 숨겨 온 태극기를 꺼내어 들고 일제히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태극기를 흔들며 만세를 연호하는 참여자들의 소리는 산 아래 마을에도 울려 퍼졌다. 문장대에서 만세운동이 발생하였다는 이야기를 들은 일본 경찰은 상주 헌병분대 4명과 수비대 보병 하사 이하 8명으로 구성된 응원대(應援隊)를 즉시 현장으로 파견하였다. 시위 현장에 출동한 일본 헌병들은 주도자들을 체포하고 군중을 무력으로 위협하자 마을의 청년들은 돌을 던지며 이들에게 저항하였다. 그러나 청년들의 투석전에도 불구하고 일본 경찰은 모여든 사람들을 강제로 해산시키고, 주도자 4명과 김농응(金聾應) 등 5명 등 모두 9명을 그 자리에서 체포하고 상주로 송치하였다. 이때 함께 붙잡혔다. 같이 체포된 김농응이 심한 고문을 받는 것을 보고 다른 주도자들과 함께 김농응은 자신들의 말을 따랐을 뿐이라고 강력하게 변론하여 출감할 수 있게 하였다. 1919년 5월 9일 대구지방법원 상주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홍종욱⋮

국어사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