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倫儀
儀1890. 11. 6 ~ 1945. 7. 11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1919년 임실군 둔남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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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890년 11월 6일 전라북도 임실군(任實郡) 둔남면(屯南面) 용정리(龍井里)에서 태어났다.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1919년 3월 23일 임실군 둔남면 일대에서 이기송(李起松)·오병용(吳秉鎔)·이영의(李英儀)·이용의(李容儀) 등과 함께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둔남면 오수리(獒樹里) 장날인 3월 23일 오후 2시경 만세시위 주도자들과 함께 장터로 이동하였다. 도착한 후 이기송이 장터에 모여 있던 사람들 앞에서 격정적으로 연설하며 만세시위에 동참할 것을 권유하였다. 그러자 이에 고무된 주민들이 독립만세를 소리 높여 외치면서 행진을 시작하였다. 시위대와 함께 오수경찰관주재소와 둔남면사무소, 그리고 시장 부근에 살던 일본인들의 가옥과 상점 등으로 몰려가 돌을 던지며 유리창과 각종 기물을 파손하는 등 격렬하게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이기송을 비롯한 주도자들이 체포되었다. 그러자 시위대와 함께 주재소로 달려가 일본인 순사 무라이(村井邑次)와 조선인 순사보 고택기(高宅基)를 구타하고, 유치장의 문을 부숴 연행된 사람들을 구출하였다. 800여 명이었던 시위대가 2,000여 명으로 불어나자, 남원(南原)의 헌병분대와 임실경찰서에서 지원 병력이 출동해 무차별적으로 총격을 가하며 시위대를 강제로 해산시켰다. 이후 일제 군경의 검속 과정에서 붙잡혔고, 조사 이후 재판에 넘겨졌다. 1919년 7월 31일 광주지방법원 전주지청에서 이른바 소요죄로 징역 3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9월 30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다시 상고하였지만, 그 해 10월 30일 고등법원에서 최종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고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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