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仁宅
仁1896. 5. 17 ~ 1945. 7. 5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2011)
관련 사건
- · 안주군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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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11) 1896년 5월 17일 평안남도 덕천군(德川郡) 덕천면(德川面) 읍북리(邑北里)에서 태어났다. 기독교도로서 안주군(安州郡) 안주읍(安州邑) 장로교 동예배당(東禮拜堂)의 청년부에 속해 활동하였다. 1919년 3월 1일, 안주군에서 시작된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안주군에서는 처음에 동예배당의 목사 김찬성(金燦星)이 서울에서 전해진 독립선언서를 보여주며 3월 1일 대규모의 만세 운동이 계획되고 있으니 참여해 달라는 권유를 하였다. 이에 김화식(金化湜)·박의송(朴義松)·김병제(金炳濟)·김병건(金炳乾)·전성걸(全聖杰)·전예순(全禮淳) 등과 함께 하기로 결심하였다. 이들과 시내 모처에서 독립선언서 1만여 장을 등사하여 안주군 각 지역에 미리 배부하는 한편, 3월 1일 안주읍 장날을 거사일로 정하여 안주읍 서문 밖에서 모이기로 결정하였다. 이후 동예배당의 교인들을 소집하여 만세시위 참여를 독려하였다. 거사 당일인 3월 1일 오후 5시, 안주읍 서문 밖에 모인 주도자 10여 명과 교인 400여 명을 비롯하여, 장날을 맞아 모인 군중 수천 명에게 독립선언서를 나누어주며 만세시위가 시작되었다. 이때, 선언서를 나누어 주는 한편 군중 앞에서 만국평화회의의 대의와 한국 독립을 요구하는 연설을 하였다. 이어 군중을 이끌고 시내를 거쳐, 건인리(建仁里)와 청교리(淸橋里) 방면으로 행진하였다. 일제의 헌병대가 만세시위의 주도자 체포에 나서면서 3월 1일 밤 헌병들에게 붙잡혔다. 이후 동예배당의 주도자들과 함께 3월 1일 밤부터 헌병대에서 조사를 받았다. 평양지방법원으로 이송되어 재판에 넘겨졌으며, 이른바 보안법 및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2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1919년 5월 10일 평양복심법원에서도 원심이 유지되었다. 다시 상고하였지만 같은 해 6월 5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풀려난 이후에는 덕천군 기독교의 영수(領袖)로 청년운동에 참여하기도 하였으며, 1928년 무렵에는 동아일보 덕천분국(德川分局)의 분국장을 지내는 등 덕천군 일대에서 활발히 활동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1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윤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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