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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一萬

一萬

1891. 10. 13 ~ 1961. 1.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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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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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금산(錦山)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북도 금산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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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관련 사건

  • · 옥천군 이원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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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1991) 1891년 10월 13일 전라북도 금산군(錦山郡, 현 충청남도 금산군) 군북면(郡北面) 보광리(寶光里)에서 태어났다. 고향에서 농업에 종사하였다. 이명은 이경록(李景祿)이다. 1919년 3월 27일 충북 옥천군(沃川郡) 이원면(伊院面) 장터에서 일어난 만세시위에 주도적으로 참가하였다. 이원면의 만세시위는 고종의 장례식에 참가하기 위해 서울에 갔다가 만세운동을 목격하고 돌아온 허상기(許相基)·허상구(許相球) 형제가 주도하였다. 이들은 육창주(陸昌柱)·김용이(金龍伊) 등을 동지로 규합하고 만세시위를 준비하였다. 거사 당일인 3월 27일 이원면 장터에서 만세시위가 시작되었고, 장터에 있던 수백 명의 군중이 동참하였다. 이때 동생인 이경만(李景滿)과 함께 참가하여 행진하며 만세를 불렀다. 일제 경찰이 허상기 등 주도 세력을 연행하자 시위 군중과 함께 헌병주재소로 가서 이들의 석방을 요구하였다. 그러자 일제 경찰은 시위대를 향해 무차별 발포를 가해 현장에서 사상자가 발생하였는데, 이 가운데 함께 참여했던 동생도 현장에서 사망하였다. 이에 분노하여 시신을 짊어지고 주재소로 가서 거세게 항의하였다. 군중도 함께 주재소의 유리창과 집기를 부수고 구속된 사람들을 일부 구출하였다. 그러나 이를 다시 진압하기 위해 출동한 일제 경찰에 의해 추가로 발포가 이루어지면서 시위 군중 가운데 다시 사상자가 발생하며 해산되었고, 이때 현장에서 붙잡혔다. 이후, 재판에 회부되어 1919년 8월 14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과 살인미수죄로 징역 5년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1980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석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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