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 독립운동가 목록으로

李宰德

宰德

1866 ~ 미상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宰德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추천 질문을 누르거나, 궁금한 내용을 직접 물어보세요.

0/200자
경북 영주(榮州)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영주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7)

관련 사건

  • · 영주군 하리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7) 경상북도 영주군(榮州郡) 하리면(下里面) 금곡동(金谷洞, 현 예천군 은풍면 금곡동) 출신이다. 판결문에 따르면 1919년 당시 54세로, 1866년생으로 추정된다. 고향에서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1919년 4월 4일 영주군 하리면 은산동(殷山洞, 현 예천군 소속) 장터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하리면 은산장터 만세운동은 1919년 3월 21일 박인서(朴仁緖)·오하근(吳夏根)이 주도한 영주면(榮州面) 만세운동에 이어 영주군에서 두 번째로 전개된 것이었다. 여기에 권창수(權昌銖)·채동진(蔡東鎭)·이용헌(李容憲)·이헌호(李軒頀)와 함께 참여하여 만세시위를 계획하고 실행하였다. 권창수는 마을 사람들에게 인근의 만세운동 소식을 알리고 만세운동에 동참할 것을 권유하였다. 주도 세력과 함께 협의하여 금곡동과 인접한 은산동에 장이 열리는 날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것을 알고, 4월 4일을 거사일로 정하였다. 거사 당일 주도세력과 함께 모두 은산시장으로 가서 저녁 6시쯤 ‘대한독립만세’를 선창하였다. 이들의 만세소리에 시장에 있던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하였고, 그들과 함께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일제 헌병과 수비대는 시위대를 해산시키려 하였고, 이 과정에서 주도 세력의 일원으로 현장에서 체포되었다. 1919년 4월 12일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고, 1919년 4월 17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감되었다. 1919년 5월 16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원판결 취소 후 동일한 형량인 징역 8월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홍종욱⋮

국어사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