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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裕萬

裕萬

1876. 10. 15 ~ 1964. 5.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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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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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안성(安城)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기도 안성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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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1919년 안성군 원곡면
  • · 양성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76년 10월 15일 경기도 안성군(安城郡) 원곡면(元谷面) 칠곡리(七谷里)에서 태어났다. 성만(性萬)이라는 이명이 있다. 고향에서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1919년 4월 1일 안성군 원곡면·양성면에서 벌어진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4월 1일 오후 이유석(李裕奭)·홍창섭(洪昌燮) 등에게 밤에 원곡면사무소에서 만세시위가 전개된다는 계획을 전달받고, 참여할 것을 결심하였다. 이날 저녁 면사무소에 앞에 집결한 1,000여 명의 원곡면 주민들과 함께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갈수록 만세시위의 분위기가 격화되었고, 주도자들이 시위대에게 일제의 경찰주재소와 면사무소, 우편소 등이 위치한 양성면으로 향하자고 외쳤다. 이에 호응하여 만세시위대와 함께 양성면으로 행진하였다. 한편, 이날 밤 양성면 주민들도 만세시위를 전개하고 있었는데, 해산 즈음에 행진해오는 원곡면의 만세시위대를 목격하였다. 이에 양성면과 원곡면의 만세시위대는 연합하여 약 2,000여 명의 규모로 확대되었다. 시위대와 함께 일제 경찰관 주재소로 향하여 돌을 던지고 불을 지르는 등 공격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이후 양성우편소, 양성면 면사무소, 평소 지역에서 원성이 높던 일본인의 상점과 집으로 향하여 격렬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고, 이러한 시위는 새벽 4시 경 끝이 났다. 원곡면으로 돌아온 뒤에도 원곡면사무소를 공격하며 만세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원곡면과 양성면의 연합 만세시위에 대해 일제는 4월 3일 조선주차군 제79연대 30여 명의 병력을 원곡, 양성 지역으로 파견하여 만세시위 참여자들에 대한 대대적인 조사, 색출 활동을 전개하였다. 일제 경찰의 조사 과정에서 만세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점이 확인되어 안성경찰서로 연행되었다. 만세시위에 대한 무력진압의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정치적 목적에서 원곡과 양성의 연합만세시위를 이용하려는 일제에 의해 이유석·홍창섭 등과 함께 이른바 내란죄 혐의로 고등법원의 재판에 회부되었다. 이에 대해 고등법원은 1920년 3월 22일 만세운동은 “소요죄를 구성할 수는 있어도 내란죄를 구성할 수는 없다”라고 판결하고, 경성지방법원을 관할 법원으로 지정하여 돌려보냈다. 그러나 8월 10일 경성지방법원이 ‘본 건 공소를 수리하지 않음’을 선언함에 따라 재판은 1921년 1월 22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진행되었다. 이 재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 및 소요죄, 방화 등의 혐의로 징역 3년을 받아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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