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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載景

載景

1868. 6. 28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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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載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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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 수안(遂安)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황해도 수안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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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2006)

관련 사건

  • · 곡산군 곡산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06) 1868년 6월 28일 황해도 수안군(遂安郡) 오동면(梧桐面) 하구암리(下口岩里)에서 태어났다. 농업에 종사하였고, 천도교인이었다. 황해도 곡산군(谷山郡) 곡산면(谷山面) 송항리(松項里) 거주할 당시인 1919년 3월 4일 곡산군 곡산면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1919년 천도교인 이종일(李鍾一)은 황해도 곡산군에 거주하는 이경섭(李景燮)에게 독립선언서를 전달함으로써 만세운동의 전국적 확산을 추진하였다. 이경섭은 3월 1일 저녁 수안천도교구를 방문하여 만세운동 소식과 함께 독립선언서를 전달하였다. 이에 따라 3월 3일 수안군에서는 천도교인이 중심이 되어서 대규모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 한편, 3월 3일 이경섭을 만나 만세운동의 소식과 독립선언서를 전달받았다. 동시에 곡산 지역에서 만세시위를 주도할 것을 권유받고, 천도교인들을 중심으로 만세시위를 추진하기로 결정하였다. 이후 김인갑(金寅甲)·강덕근(康德根)을 동지로 규합하여 3월 4일 만세시위를 벌일 것을 계획하였다. 조병하(趙秉夏)·이병규(易秉奎) 등도 설득하여 만세시위 준비에 참여시켰다. 거사 당일인 3월 4일 오전 10시를 전후로 천도교인들이 중심이 된 시위대가 읍내로 모여들었다. 이경섭·김인갑·강덕근·조병하 등과 함께 ‘조선독립’이라고 쓴 깃발을 세우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면서 행진하였다. 이에 일제 헌병대는 시위대의 행진을 저지하였다. 선두에서 시위를 주도하다가 일제 헌병에게 김인갑 등 7명과 함께 붙잡혀 연행되었다. 1919년 4월 25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지만, 같은 해 5월 17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만세시위 참여를 “조선 민족으로서 정의와 인도에 입각한 행동이기에 죄가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재차 상고하였다. 하지만 그해 6월 14일 고등법원에서 최종 기각되어 서대문감옥에서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6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한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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