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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正根

正根

1856. 2. 10 ~ 1919. 4.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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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正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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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남양(南陽)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기도 남양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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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관련 사건

  • · 수원군 향남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1) 1856년 2월 10일 경기도 남양군(南陽郡, 현 화성시) 팔탄면(八灘面) 가재리(佳才里)에서 이연규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호는 탄운(灘雲)이다. 부친에게 한학을 전수받고 19세에 결혼하여 28세부터 집안의 행랑채와 사랑방에서 아동들을 가르쳤다. 33세 때 대한제국 궁내부(宮內府)의 주사(主事)가 되었으나,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관직을 그만두고 귀향하였다. 이후 수원(水原)에서 서당을 세워 학생들에게 한학을 가르침과 동시에 민족의식을 고취시켰다. 제자들에게 ‘일본은 3년을 못 가서 망한다’라는 뜻의 ‘왜왕(倭王) 3년’이란 말을 공공연히 하다가 일제 경찰에 소환되어 조사를 받기도 하였다. 1919년 고종이 사망하자 제자들로 하여금 밤마다 산에 올라 서울을 향해 곡을 하는 망곡제(望哭祭)를 드리게 했는데, 이 일로 주재소에 며칠간 갇혀 있었다. 곧이어 서울에서 만세운동이 시작되자, 3월 20일 수원 삼일학교에서 등사한 독립선언서를 제자를 통해 전해 받게 되었다. 팔탄면의 김흥렬(金興烈), 장안면(長安面)의 백낙렬(白樂烈), 향남면(鄕南面)의 안정옥(安政玉) 등 지역의 천도교와 기독교 지도자들과 함께 향남면 발안리(發安里)의 장날에 맞춰 3월 31일에 만세운동을 일으키기로 계획하였다. 이때 시위 참여자들은 흰 갓을 쓰거나 흰 띠를 둘러 서로 식별할 것을 약속하였다. 만세운동에 앞서 다음과 같은 4·4조 창가 형식의 ‘삼일독립가(三一獨立歌)’를 작사하였다. “터졌구나 터졌구나/ 독립성이 터졌구나/ 십오년을 참고참다/ 이제서야 터졌구나/ 피도대한 뼈도대한/ 살아대한 죽어대한/ 잊지마라 잊지마라/ 하느님이 도우시네/ 대한국운 다시왔네/ 어두웠던 방방곡곡/ 독립만세 진동하네/ 삼천만민 합심하여/ 결사독립 맹세하세/ 대한독립 만세만세/ 대한독립 만세만세.” 3월 31일 오후 1시 발안장터에서 시작된 만세운동은 1,000여 명의 군중이 참여하는 대규모 시위로 발전하였다. 군중은 시장을 떠나 주재소로 행진하였으며, 일본인 가옥과 소학교에 돌을 던졌다. 일제는 총검으로 무장한 수원 수비대 헌병 30여 명을 출동시켰는데, 이때 현장에서 헌병의 총검에 복부를 찔려 4월 5일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196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권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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