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인명사전 - 한국독립운동정보시스템
1922. 2. 12 ~ 1950. 10. 29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대구사범학교 연구회
포상 정보
- · 애국장(2003)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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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2003) 1922년 2월 12일 경상남도 밀양군(密陽郡) 삼랑진면(三浪津面) 송지리(松旨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임병찬(林炳讚)이다. 대구사범학교에 입학해 1939년 이후부터 독서토론을 통해 국제 정세를 분석하며 독립을 위한 학생운동을 모색하였다. 학생운동에 참여하게 된 동기는 1939년 일본인 교사의 민족 차별로 촉발된 대구사범학교 왜관 사건이었다. 1941년 1월 하순 대구사범학교 동급생인 강두안(姜斗安)·안진강(安津江)·김영복(金榮宓)·최낙철(崔洛哲)·윤덕섭(尹德燮)·이무영(李茂榮) 등과 함께 한국 독립에 대비해 각자가 선호하는 학문 분야에서 연구에 매진하여 한국 최고 권위자가 될 것을 기약하는 결의를 맺었다. 그리고 표면적으로는 학술 연구를 표방하면서 실제로는 실력양성을 바탕으로 민족의식 앙양을 목적으로 하는 비밀결사 연구회(硏究會)를 결성하였다. 연구회는 문학부·역사부·공업부·정치경제부 등 모두 14부를 두고 회원의 학문 함양에 매진하였다. 연구회에서 교육부 책임을 맡으면서 대구의 여타 중등학교 학생들과의 접촉을 주도하며 조직을 확대하려고 하였으나, 성과를 거두지는 못하였다. 1941년 3월 졸업 후에는 함북 청진(淸津)의 천마공립국민학교 교사로 부임하여, 학생들과 학부형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시키고 배일사상을 주입하는 등의 활동을 지속하였다. 그런데 1941년 7월 대구사범학교 8기생으로 충남 홍성(洪城)에서 교사로 근무하던 정현(鄭鉉)이 갖고 있던 『반딧불』이 일제 관헌에게 입수되면서 대구사범학교 비밀결사의 전모가 드러나게 되었다. 이후 대구사범학교 비밀결사 관련자 300여 명과 함께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이 일로 1941년 8월부터 2년 3개월 동안 예심을 거쳐, 1943년 11월 30일 대전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5년을 받았다. 옥고를 겪다가 광복 이후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3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김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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