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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삼

李在三

1874. 7. 12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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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이재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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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장단(長湍)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기도 장단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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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2013)

관련 사건

  • · 1919년 장단군 대남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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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13) 1874년 7월 12일 경기도 장단군(長湍郡) 대남면(大南面) 장좌리(長佐里)에서 태어났다. 고향에서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1919년 4월 1일 장단군 대남면에서 일어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전국적으로 만세운동이 일어나는 가운데 경기도 장단군에서도 만세시위의 열기가 이어졌다. 서울 등지에서 만세시위가 퍼진다는 소식이 당도하자 3월 23일 진남면(津南面)에서 만세시위가 시작되었다. 면민 수백여 명이 참여한 만세시위는 며칠간 이어졌고, 곧 인근의 군내면(郡內面)·진서면(津南面)으로 확산되었다. 장단군의 만세운동은 3월 23일부터 4월 초까지 집중적으로 전개되었다. 4월 1일 대남면에서도 만세시위가 준비되고 있었다. 같은 마을인 장좌리에 살던 함정원(咸貞元)과 주민들의 조직적인 참여를 궁리하였다. 이들은 “이날 밤 동민 각자는 작은 구한국 국기 1류, 5명마다 봉화 1개, 각 동마다 큰 태극기 한 장을 가지고 위천리(渭川里) 용산동에 집합하라”는 문서를 작성하고 각 동장들에게 전달하였다. 구체적인 내용이 확정되자 동장들은 문서를 마을에서 회람하고 시위 준비물을 챙겼다. 거사 시간인 4월 1일 밤이 되자 미리 준비하고 있던 마을 주민 100여 명이 시위 장소인 대남면사무소와 사립 명성학교에 모였다. 시위대는 교정을 먼저 돌면서 ‘독립만세’를 외쳤다. 면사무소에 도착하자 난입하여 기물을 파괴하였다. 이날 시위 이후 마을 주민들의 시위는 더 격화되어 4월 3일에도 1,000여 명의 주민들이 오후 1시경 크게 시위를 벌였다. 시위 후에 붙잡혀 만세시위를 주도했다는 이유로 함정원과 함께 재판에 회부되었다. 1심을 거쳐 1919년 5월 20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았다. 서대문감옥에서 옥고를 겪다 1920년 4월 28일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3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임광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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