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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宰儀

宰儀

1885. 7. 7 ~ 1934. 8.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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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宰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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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임실(任實)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북도 임실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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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1919년 임실군 둔남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85년 7월 7일 전라북도 임실군(任實郡) 둔남면(屯南面) 둔덕리(屯德里)에서 태어났다. 고향에서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1919년 3월 23일 임실군 둔남면 일대에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3월 23일은 오수리(獒樹里) 장터의 장날로 이 때문에 임실군과 주변 지역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이기송(李起松)·오병용(吳秉鎔)·이영의(李英儀)·이윤의(李倫儀) 등의 시위 주도자들은 이를 이용해 그날 2시부터 장터에 모인 군중 앞에서 격정적인 연설을 하며 만세운동에 동참할 것을 권하였다. 이에 고무된 시위 군중과 함께 ‘독립만세’를 높이 외치며 장터부터 둔남면 일대로 행진하기 시작하였다. 시위가 계속 전개되면서 시위 군중과 함께 둔남면 일대의 주재소와 둔남면사무소 등으로 행진하였으며, 도중에 시장 부근에 살던 일본인들의 가옥과 상점 등에 몰려가 돌을 던지며 유리창과 각종 기물을 파손하는 등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이때 시위 도중 이기송을 비롯한 시위 주도자들이 조선인 순사보 고택기(高宅基)에게 붙잡히자, 시위 군중과 함께 주재소로 물러가 고택기와 주재소에 있던 일본인 순사 무라이(村井邑次)를 구타하고 이들을 석방할 것을 요구하였다. 특히, 이기송·김영필(金永弼) 등 연행된 사람들을 구출하는 데에 직접 활약하였다. 시위는 그날 저녁까지 계속되면서, 800여 명이었던 시위 군중의 규모가 계속해서 늘어나 종국에는 2,000명에 달하였다. 그러나 시위 소식을 접하고 남원(南原)에서 출동한 일제 헌병분대의 지원 병력이 출동해 무차별 발포를 시위 군중에 가하면서 시위대는 강제 해산되었는데, 이때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1919년 5월 27일 광주지방법원 전주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8월 15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2년을 받았다. 재차 상고하였으나 그해 10월 18일 고등법원에서 상고가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고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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