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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在蘅

在蘅

1886. 12. 15 ~ 1919. 3.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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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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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함안(咸安)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함안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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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관련 사건

  • · 1919년 함안군 군북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1) 1886년 12월 15일 경상남도 함안군(咸安郡) 군북면(郡北面) 소포리(小浦里)에서 태어났다. 자는 경행(景行)이고, 이명은 이갑이(李甲伊)이다. 당시 군북면사무소 서기였지만, 일제 경찰의 주목을 받을 정도로 민족주의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 1919년 3월 20일 전개된 함안군 군북면의 만세시위를 주도하다가 희생되었다. 고종의 장례에 참여했던 함안지역 유지들에게 서울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에 대해 듣고 만세시위에 적극 가담하였다. 3월 20일 계획된 거사의 준비과정에서 면서기의 신분을 적극 활용하여 일제 경찰과 밀정들의 동태를 정탐해 알렸다. 이를 통해 3월 9일 칠북면(漆北面) 이령리(二靈里) 연개장터 만세시위를 시작으로 연달아 펼쳐진 함안지역 만세운동으로 인해 일제의 감시가 극도로 강화됨에도 불구하고 거사 계획이 발각되지 않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특히 3월 19일에는 같이 거사를 계획한 조상규(趙相奎)·조용효(趙鏞孝)·조정래(趙正來)·조성규(趙聖奎)·조경식(趙璟植)·조형규(趙炯奎) 등과 함께 함안 읍내 만세시위에 참여하고 면사무로 돌아와, 주재소 경찰의 동정을 파악하며 다음날 만세시위가 차질 없도록 대비하였다. 3월 20일 오전 동촌리(東村里)에 있는 사립 신창학교(新昌學校) 교정으로 이동하였다. 만세시위는 오전 9시 조상규가 학생 50여 명 앞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당시 군북면에 파견되어 있던 진해만 중포병대대가 진압에 나서면서 시위대는 일단 해산하였으나, 군북 장터로 이동하여 오후 1시 경부터 다시 만세시위를 시작하였다. 조상규가 장터 인근 냇가 둑 위로 올라가 다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였고, 이어서 조용규(趙龍奎)가 ‘대한독립만세’를 선창하였다. 이후 시위대와 함께 신창리(新倉里)·소포리·덕대리(德垈里) 등을 행진하며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 과정에서 다수의 사람들이 만세시위에 동참해 시위대는 5,000명으로 늘어났다. 그러자 진해만 중포병대대가 다시 진압에 나섰고, 공포탄을 발사하며 시위대를 해산시키려고 하였다. 만세시위에 참여한 사람들과 함께 이에 대응해 몸싸움을 전개하며 군북면사무소와 주재소로 이동하였고, 투석전도 전개하였다. 결국 위협을 느낀 중포병대대가 시위대를 향해 일제히 실탄 사격을 하였고, 선두에서 만세시위를 전개하다가 그 자리에서 총격에 맞아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배석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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