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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汀秀

汀秀

1888. 9. 3 ~ 1953. 2. 15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汀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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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하동(河東)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하동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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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02)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2002) 1888년 9월 3일 경상남도 하동군(河東郡) 화개면(花開面) 정금리(井琴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11일 하동군 화개면 정금리 만세시위를 계획하였다. 1919년 4월 10일 밤 이강률(李康律)·이정철(李正哲)·임만규(林萬圭) 등과 함께 자신의 집에 모여 화개면 장날인 4월 11일 ‘독립 만세’를 외치며 만세시위를 전개하기로 결의하였다. 이어 면민들의 만세시위 참여를 독려하는 내용의 권고문과 화개면사무소 직원의 사직을 종용하는 경고문을 작성하였다. 권고문의 내용은 “오늘 장날에 어떤 사람이 만세를 외칠 것이니 따라 불러야 한다. 만약 따라 부르지 않으면 불은 놓아 가옥을 태워 버리고 가족을 체포해 살육할 것이다.”라는 것이었다. 그날 밤 임문규(林文圭)를 시켜 권고문과 경고문을 화개면사무소에 붙이도록 하였다. 이튿날인 4월 11일 정오 무렵 이강률·이정철 등과 함께 화개장터로 나갔는데, 장날을 맞이해 장을 보러 나온 군중으로 붐비고 있었다. 군중 속에서 ‘독립만세’를 외치려던 찰나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이날 만세시위를 계획한 일로 동지들과 함께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6월 9일 부산지방법원 진주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 협박죄로 징역 10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7월 4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2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하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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