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 독립운동가 목록으로

李定洙

定洙

1888. 9. 26 ~ 1961. 9. 19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定洙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추천 질문을 누르거나, 궁금한 내용을 직접 물어보세요.

0/200자
충남 홍성(洪城)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남도 홍성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5)

관련 사건

  • · 홍성군 금마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5) 1888년 9월 26일 충청남도 홍성군(洪城郡) 금마면(金馬面) 송강리(松江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홍성군 금마면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부평리(富平里)의 서당 훈장인 민영갑(閔泳甲)은 3월 1일 이래 전국 각지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나고 있음을 인식하고 평소 교류가 있던 이재만(李載萬)과 협의하여 만세운동을 계획하였다. 이들의 계획에 김재홍(金在洪)·최중삼(崔仲三)·조재학(趙載學)·조한원(趙漢元) 등이 적극 찬성하여 동지로 결합하면서 만세운동 계획이 본격적으로 추진되었다. 이들은 4월 1일로 예정된 가산리(佳山里) 이원교(李元交)의 집에서 연극이 공연되자, 모인 주민들을 설득하여 만세시위를 시작하기로 하였다. 연극공연일에 민영갑·이재만·김재홍·최중삼·조재학·조한원은 관객으로 참석하여 연극을 관람하면서 만세시위의 기회를 노렸다. 이들은 연극이 공연 중이던 오후 8시 ‘조선독립만세’를 선창하고 주민들에게 만세운동에 동참할 것을 역설하였다. 이에 공감한 수십 명의 주민들이 만세시위에 동참하여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면서 연극공연장은 곧바로 만세시위장으로 전환되었으나, 이 시위는 일제 경찰에 의해 곧바로 해산되었다. 4월 4일에는 홍성군 금마면과 그 주변 3개 면의 20여 개소에서 봉화시위가 일어났다. 홍성경찰서 관할 일제 경찰들이 총기를 발포하여 만세시위 참가자 10여 명이 사망하고 주도 인물 5명이 붙잡혔다. 현재 전하는 자료의 한계로 참여한 금마면 만세시위를 특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금마면 만세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는 이유로 일제 경찰에 붙잡혀 홍성경찰서로 끌려갔다. 일제 경찰의 조사 결과, 즉결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4월 23일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는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도면회⋮

국어사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