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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正儀

正儀

1861. 8. 21 ~ 1937. 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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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正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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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임실(任實)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북도 임실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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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임실군 둔남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61년 8월 21일 전라북도 임실군(任實郡) 둔남면(屯南面) 오수리(獒樹里)에서 태어났다. 고향에서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1919년 3월 23일에 일어난 둔남면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1919년 3월 23일 오후 2시부터 시위가 시작되면서 장터에 모인 군중과 함께 ‘독립만세’를 높이 부르며 둔남면 일대를 행진하기 시작하였다. 시위가 계속 전개되면서 시위 군중과 같이 둔남면 일대의 주재소와 둔남면사무소, 그리고 시장 부근에 살던 일본인들의 가옥과 상점 등으로 몰려가 돌을 던지며 유리창과 각종 기물을 파손하는 등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그러나 시위 도중 이기송(李起松)과 김영필(金永弼)을 비롯한 주도자들이 붙잡히자 시위대와 함께 주재소로 몰려갔다. 주재소에 있던 일본인 순사 무라이 유우츠키(村井邑次)와 한국인 순사보 고택기(高宅基)를 구타하고 이들의 총을 빼앗았다. 곧 유치장의 문을 부수고 연행된 사람들을 구출하는 등의 활약을 보이기도 하였다. 처음 800여 명으로 시작된 시위 군중의 숫자는 계속해서 늘어나 그날 저녁에 이르러서는 2,000명에 달하였다. 그러나 그날 저녁 시위 소식을 접한 남원(南原) 헌병분대가 지원 병력을 급파해 무차별 발포와 함께 시위대를 강제 해산하였다. 이때 다른 동지들과 함께 붙잡혔다. 1919년 7월 31일 광주지방법원 전주지청에서 이른바 소요죄로 징역 1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9월 30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고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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