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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廷讚

廷讚

1892. 11. 15 ~ 1960. 10.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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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廷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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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마산(馬山)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마산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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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마산노농동우회

포상 정보

  • · 애족장(2008)

관련 사건

  • · 마산부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08) 1892년 11월 15일 경상남도 마산부(馬山府) 외서면(外西面) 완월리(玩月里, 현 창원시 마산합포구 완월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21일 경상남도 마산부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1923년 마산노농동우회(馬山勞農同友會) 간부로 활동하며 항일활동을 전개하였다. 1919년 3월 1일 서울·평양(平壤)·안주(安州) 등의 지역에서 만세운동이 일제히 일어났다. 천도교·개신교·불교 등의 종교계, 민족대표와 학생대표들은 만세시위 소식과 독립선언서를 전국 각 지역으로 전달함으로써 만세운동의 전국적 확산을 추진하였다. 1919년 2월 23일 이갑성(李甲成)은 마산에서 개신교 유력 인사인 창신학교 교사 임학찬(任學讃)을 만나 장로교회 장로인 이상소(李相召) 등을 소개받았다. 그 자리에서 만세시위 계획을 전달하고 시위의 대표가 되어 줄 것을 권유한 후 귀경하였다. 1919년 2월 28일 민족대표인 이갑성은 역시 민족대표인 김창준(金昌俊)으로부터 독립선언서 600여 장을 전달받은 후, 3월 1일 아침에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학생 이용상(李容祥)에게 대구(大邱)와 마산 일대에 전달해 줄 것을 요청하면서 400여 장을 건네주었다. 3월 1일 밤 마산에 도착한 이용상은 이상소와 임학찬에게 선언서를 전달하면서 마산 일대에서 만세시위를 전개할 것을 권유하였다. 이에 이상소와 임학찬은 이형재(李炯宰)에게 선언서를 전달하였고, 이형재는 이를 다시 김용환(金容煥)에게 건네주었다. 고종의 장례식이 열리는 날인 3월 3일 김용환은 고종의 장례식이 열렸던 마산부 무학산(舞鶴山)에서 독립선언서 20여 장을 배포하면서 단독으로 ‘독립만세’를 외치었다. 3월 12일 만세시위 소식을 들은 마산의 창신학교와 의신학교 전 직원은 사표를 제출하였다. 3월 15일과 16일 마산부 구마산(舊馬山)에서 만세시위가 계획되었으나, 일제 군경에게 사전에 발각되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최용규(崔鏞奎)·이형재(李瀅宰)·명도석(明道奭)·최동락(崔東洛)·신택식(辛澤植) 등과 함께 3월 21일 장이 열리는 구마산 일대에서 만세시위를 일으키기로 결의하고, 계획을 마산의 학생대표들에게 전달하였다. 3월 21일 장터에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오후 3시 무렵 만세시위 주도자들과 함께 ‘대한독립’이라는 글귀가 작성된 큰 깃발을 들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면서 만세시위를 시작하였다. 장터에 모인 사람들은 태극기를 흔들고 ‘독립만세’를 외치면서 시위에 참여하였다. 한편 마산부 시내에서는 개신교인과 학생들이 주도하는 가운데 2,000~3,000여 명의 시위대가 만세시위를 전개하였으며, 구마산 일대에서는 2,5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만세시위가 일어났다. 헌병대로만 시위 진압이 어렵게 되자, 마산에 주둔 중인 일본군 중포병대대병(重砲兵大隊兵) 21명이 만세시위 진압에 합류하였다. 오후 6시 무렵 무력을 이용한 일제 군경의 시위 진압으로 시위대는 해산하였다. 이 일로 붙잡혀 재판에 회부되어 징역 1년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1920년 4월 28일 풀려났다. 1923년 3월에는 김명규(金明奎)·김기호(金琪鎬) 등과 함께 마산노농동우회(馬山勞農同友會)를 창립하고 조사부 주임으로 활동하였다. 1923년 7월 17일 마산노농동우회가 마산구락부 회관에서 개최한 경성 여공들의 동맹파업에 동조하는 연설회에서 사회를 보았으며, 1924년 3월 16일 마산노농동우회가 마산구락부 회관에서 주최한 일본 관동대지진(關東大地震) 당시 희생된 한국인들의 추도회에서도 사회를 보았다. 같은 해 5월 26일 창원부(昌原府)의 소작조합에서 주최한 강연회에서는 「소작운동의 술책」이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하였다. 1924년 마산청년회(馬山靑年會) 집행위원 및 위원장을 맡았으며, 1930년에는 신간회(新幹會) 마산지회 위원을 역임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8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한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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