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鍾龍
鍾龍1899. 2. 20 ~ 1986. 2. 11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3)
관련 사건
- · 울산군 하상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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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1993) 1899년 2월 20일 경상남도 울산군(蔚山郡) 하상면(下廂面) 남외리(南外里, 현 울산광역시 중구 남외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울산군 하상면 병영리(兵營里, 현 울산 중구 병영동)에서 전개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하상면 만세시위는 서울과 인근의 양산(梁山)·언양(彦陽) 등지의 만세시위 소식을 전해들은 병영청년회(兵營靑年會) 간부 이현우(李鉉禹)·이종욱(李鍾旭)·이문조(李文祚) 등의 주도로 시작되었다. 1919년 4월 3일 동지들과 함께 이종근(李鐘根)과 박영하(朴永夏) 집에 모여 4월 4일을 거사일로 정하고,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만드는 등 거사를 준비하였다. 이날 혈서로 ‘결사보국(決死報國)’이라 서명하는 등 동지들과 거사의 결의를 다지기도 하였다. 4월 4일 오전 9시 병영청년회 회원들과 함께 하상면 병영리 사립일신학교 교정으로 가 학생들과 함께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11시 40분 ‘대한독립만세’라고 쓴 큰 깃발을 양석룡(楊錫龍)이 높이 들자, 이어서 시위에 참여한 사람들이 미리 준비한 태극기를 품속에서 꺼내며 다같이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성내 주민들까지 호응하면서 순식간에 200여 명으로 늘어난 시위대는 태극기를 앞세운 채 ‘독립만세’를 외치며 하상면 동리(東里)·남외리·산전리(山田里) 등지를 행진하였다. 이러한 소식을 듣고 달려온 일제 경찰과 일본수비대가 무력을 행사하며 진압하였다. 이날 시위에 참여한 혐의로 동지들과 함께 붙잡혀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4월 22일 부산지방법원 울산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풀려난 후에도 병영청년회와 울산청년연맹 등에서 활동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하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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