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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鍾禹

鍾禹

1880. 6. 8 ~ 1951. 11. 24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鍾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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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횡성(橫城)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강원도 횡성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2)

관련 사건

  • · 1919년 횡성군 서원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1992) 1880년 6월 8일 강원도 횡성군(橫城郡) 서원면(書院面) 분일리(分一里, 현 원주시 호저면 매호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12일 횡성군 서원면 분일리에서 펼쳐진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1919년 4월 12일 오후 송병기(宋秉箕)·박민희(朴民喜)·성태현(成泰鉉) 등은 회의를 위해 모인 자리에서 서원면 분일리 만세시위를 결의하였다. 이들은 같은 마을에 사는 송병창(宋秉昌)의 집에 모여 회의를 하던 중, 전국에서 일어나는 만세시위를 주제로 이야기하면서 자신들의 마을에서도 시위를 펼치기로 결의하였다. 주도자들은 만세운동이 조국의 독립을 위한 시위라는 것에 견해를 같이하면서 그날 밤 실천에 옮기기로 하였다. 밤 9시경 주도자들은 향산리(香山里)·조항리(鳥項里)·수동리(水洞里)·상촌리(上村里) 등 인근 마을 주민 50여 명을 모아 향산리와 조항리 사이에 있는 뒷산에 올랐다. 산 정상에서 주도자와 시위대는 동시에 한 목소리로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이들의 외침은 마을 곳곳에 울려 퍼졌고, 당시 김옥봉(金玉鳳)의 집에서 유정근(柳定根)·이정헌(李正憲) 등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가 만세소리를 듣고 자리에서 일어나 뒷산으로 향하였다. 이때 같은 생각을 한 20여 명의 주민들도 만세시위가 거행되고 있던 뒷산으로 올라왔다. 이들의 참여로 더욱 힘을 얻게 된 시위대와 함께 산 정상에서 소리 높여 ‘독립만세’를 연호하였다. 이후 시위대와 더불어 다시 한번 마을로 내려와 만세시위를 펼쳤다. 다음 날 새벽 1시까지 이어진 만세시위는 참여자들이 모두 귀가하면서 마무리되었다. 이 일로 붙잡혀, 1919년 5월 15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정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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