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鍾夏
鍾夏1875. 2. 12 ~ 1948. 11. 6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5)
관련 사건
- · 1919년 진천군 백곡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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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05) 1875년 2월 12일 충청북도 진천군(鎭川郡) 백곡면(栢谷面) 성대리(城大里)에서 태어났다. 농업에 종사하였다. 1919년 4월 2일 최태성(崔泰成)·오성문(吳聖文)·공시삼(孔時三) 등과 함께 백곡면 석현장터에서 전개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진천군 백곡면 만세시위는 대문리(大門里)·갈월리(葛月里)·양백리(兩白里)·성대리 등의 마을에서 주도자들이 사전 연락과 협의를 통해 준비되었다. 1919년 4월 1일 대문리의 이장 최태성과 주민 장진호(張晋鎬)·서정직(徐廷直) 등은 백곡면의 각 지역에 “4월 2일 조선의 독립을 위해 장날 석현리(石峴里) 장터에서 만세운동을 전개할 예정”이라는 통지문을 보냈다. 갈월리의 오성문과 양백리의 공시삼은 이러한 제안을 즉각 수락하며, 주민들에게 만세시위에 참여할 것을 호소하였다. 평소 시국에 대해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던 공시삼이 방문해 백곡면 만세시위 계획을 제안하자, 곧바로 동의하고 동지로 결합하였다. 그리고 성대리 주민들에게 독립을 위한 만세시위의 취지를 역설하며 다음날 거사에 참여할 것을 호소하였다. 이에 공감한 20여 명의 주민들이 만세시위 참여를 결의하였다. 4월 2일 20여 명의 성대리 주민들을 이끌고 석현장터로 이동하였고, 장터로 들어가는 길목에서 대문리와 갈월리 주민들로 구성된 시위대와 합류하였다. 곧이어 양백리와 용덕리(龍德里)의 주민들도 시위대열에 동참하여 큰 목소리로 ‘독립만세’를 외치며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최태성·오성문·신영희(申英熙)·공시삼 등과 함께 1,000여 명으로 불어난 시위대를 지휘하여 ‘독립만세’를 연창하며 석현장터로 행진하였다. 그리고 장터의 한복판에서 독립을 선언하고, ‘독립만세’를 계속 외치면서 장터 곳곳을 행진하였다. 이어서 석현헌병주재소로 앞으로 이동해 ‘독립만세’를 외치는 만세시위를 밤새도록 전개하였다. 백곡면의 만세시위는 다음날인 4월 3일로 이어졌다. 이날 아침 최태성·오성문·공시삼 등과 논의를 통해 진천 군내로 행진해 만세시위를 더욱 확산시키기로 결정하였다. 대규모 시위대가 진천 군내로 이동한다는 보고를 받은 진천의 일제 헌병대가 출동해 사송리(沙松里)에서 시위대를 막아섰다. 이에 신영희 등 선두에 있던 주민들이 일제 헌병과 격투하며 만세시위를 계속하려고 하였으나, 일제 헌병들이 총격을 가하며 시위대를 강제로 해산시켰다. 이 과정에서 붙잡혀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4월 17일 공주지방법원 청주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월을 받아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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