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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鍾學

鍾學

1879. 8. 6 ~ 1943. 3.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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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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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청도(淸道)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청도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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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1995) 1879년 8월 6일 경상북도 청도군(淸道郡) 대성면(大城面, 현 청도읍) 내호동(內湖洞)에서 태어났다. 한자가 다른 이종학(李鍾鶴)과 이용학(李龍學)·이종석(李鍾錫)이라는 이명이 있다. 1919년 5월 7일 청도군 대성면 유호동(楡湖洞)에서 동생을 다치게 한 일본인들을 구타하였다가 일제 경찰에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1919년 5월 7일 대성면 유호동 유천시장(楡川市場) 근처에 위치한 김달선(金達先)의 집에 일본인 야마구치 토라오(山口虎雄)·미즈노 키사부로(水野喜三郞)·미츠다 사쿠지(光田作次) 등이 숙박을 위해 머무르고 있었다. 마침 김달선의 집 앞에서 어린이들이 놀고 있었는데, 미즈노가 아이들이 시끄럽게 하여 독서를 방해한다면서 방에서 칼을 들고 나와 놀고 있던 아이 한 명의 입술을 베어 버렸다. 일본인에게 상해를 입은 아이는 동생인 이종현(李鐘鉉)이었다. 일본인에게 동생이 상해를 입었다는 소식을 듣고 격분해 김영곤(金永坤) 등 마을 청년 약 20명과 함께 미즈노 등 일본인 3인을 찾아갔다. 김달선의 집에 도착한 후 이봉술(李鳳述)·김동식(金東植) 등과 함께 먼저 방으로 들어가 일본인들을 구타하였다. 이때 미즈노가 도주하였지만 마을 우물 근처에 있던 동네 청년에게 붙잡혔고, 주변에 있던 마을 사람들이 합세하여 미즈노를 응징하였다. 이 일로 야마구치는 갈비뼈 부근에 상처를 입어 1개월 정도를, 미즈노는 두개골 좌측에 12일 정도의 치료를 요하는 창상을 입었다. 일본인이 구타를 당한다는 소식을 입수하고 출동한 일제 경찰에게 현장에서 붙잡혔다. 1919년 7월 10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소요죄와 상해죄, 건조물 손괴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해 항소하였고, 같은 해 9월 15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원판결이 취소되고 다시 징역 4월을 받아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홍종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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