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鍾協
鍾協1895. 6. 15 ~ 1929. 6. 7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6)
관련 사건
- · 1919년 예천군 용문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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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06) 1895년 6월 15일 경상북도 예천군(醴泉郡) 용문면(龍門面) 상금곡동(上金谷洞)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3일 용문면 상금곡동에 위치한 용문면사무소 앞에서 전개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만세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되면서 예천군 용문면에서도 권석인(權錫寅)을 중심으로 만세시위가 계획되었다. 유림인 권석인은 2월 29일 고종의 국상에 참여하기 위해 상경한 후, 만세운동을 직접 목격하고 독립선언서를 입수해 귀향하였다. 이어서 권석인은 재종형인 권석호(權錫虎)와 만세시위를 계획하였고, 독립선언서를 여러 장 등사해 인근 마을에도 배부하면서 참여자들을 모았다. 이들은 예천 장날인 3월 12일에 만세시위를 펼치기로 계획하였으나, 일제 경찰의 감시로 거사일을 다음 장날인 3월 17일로 연기하였다. 그러나 이 날도 일제 경찰의 경계가 심해 거사를 미루게 되었고, 4월 3일 긴급하게 연락해 만세시위를 전개하게 되었다. 4월 3일 밤 9시경 권석인·권석호·권석효(權錫孝) 등은 주민 30여 명과 더불어 죽림동(竹林洞)에서 먼저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그리고 이들이 밤 10시경 용문면사무소가 위치한 상금곡동에 도착하자,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합류하였다. 이어서 권석인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만세를 선창하자, 100여 명으로 불어난 시위대와 함께 독립만세를 외치면서 면사무소 앞길을 따라 행진하였다. 자정 무렵까지 만세시위가 계속되었지만, 출동한 용문헌병출장소 헌병들은 무력으로 시위대를 진압하면서 주도자 10여 명을 붙잡았다. 이때 권석인·권석호 등과 함께 붙잡혀 재판에 넘겨졌다. 1919년 4월 8일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4월을 받아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홍종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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