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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俊根

俊根

1885. 9. 12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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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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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 황주(黃州)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황해도 황주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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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2011)

관련 사건

  • · 황주군 황주읍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1) 1885년 9월 12일 황해도 황주군(黃州郡) 흑교면(黑橋面) 흑교리(黑橋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만세운동 당시 상업에 종사하였으며, 그 해 3월 2일 황주군 황주읍(黃州邑) 남천(南天)장터에서 전개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평안남도 중화군(中和郡)에 거주하는 최창룡(崔昌龍)은 황주군 황주읍의 천도교구에 만세운동 소식과 독립선언서 10장을 건네주었다. 황주읍 천도교구의 소(小)교구장 김성준(金聲駿)과 교훈(敎訓) 황기타(黃己拕)는 천도교인들이 모이는 일요일이자 남천장터가 열리는 3월 2일 만세시위를 전개하기로 결정하였다. 김성준과 황기타는 평소에 독립을 염원하였던 황주군 인사들에게 3월 2일 만세시위의 참여를 독려하였다. 황주면(黃州面) 황강리(黃崗里)의 최석길(崔錫吉)·김광섭(金光燮), 황주면 성남리(城南里)의 김병식(金炳植), 황주면 벽성리(碧城里)의 조진영(趙鎭榮) 등은 만세운동의 참여를 결정하였다. 천도교구실은 이와는 별도로 천도교인들에게 남천장터 만세시위 계획을 알리고 참여를 독려하는 연락을 취하였다. 3월 1일 황주읍 천도교구실로부터 민족대표 33인의 독립선언 및 만세운동 소식을 들었으며, 3월 2일 남천장터의 만세시위 참여를 권유받았다. 여기에 찬동하여 남천장터 만세시위의 참여를 결심하였다. 3월 2일 오후 2시 황주읍 남천장터에서 만세시위가 시작되자, 황기타와 조진영이 주도하는 시위대에 합류하였다. 황기타는 독립선언서를 나누어주면서 천도교인들이 중심이 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고, 조진영은 장터에 모인 사람들 앞에서 독립선언서의 취지를 주제로 연설을 하면서 만세시위 참여를 독려하였다. 시위대의 일원으로 황주경찰서에서 일제 경찰과 대치하였다. 일제 경찰이 김병식과 강형섭(康亨燮)을 체포하자, 시위대와 함께 구금자 석방을 격렬히 요구하는 한편, 조진영·최석길과 함께 40여 명의 시위대를 이끌고 경찰서 내부로 진입하였다. 그곳에서 경찰청사 내부를 부수고 경찰의 진압을 저지하였다. 그 후 시위대와 함께 경찰서를 나와서 예수교 예배당에 도착해서 예수교인들에게 만세시위의 취지를 설명하였다. 남천리 만세운동이 확산되자, 황주경찰서는 인접 지역에 경찰력 지원을 요청하는 한편, 소방조를 시위 진압에 투입하기도 하였다. 일제 경찰과 헌병은 오후 5시에 만세운동 주도 세력과 시위대 200여 명이 휴식을 취하는 황주읍 천도교구실을 급습하였다. 이때 남천장터 만세시위의 주도자 황기타와 함께 현장에서 붙잡혔다. 남천장터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는 이유로 평양지방법원으로 압송되었다. 평양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소요죄와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5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만세운동에는 참여하였으나 소요 사실에는 관계하지 않았다”라며 항소하였으나, 1919년 5월 29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원심 그대로 판결하였다. 재차 상고하였지만, 그해 7월 12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1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한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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