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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俊明

俊明

1883. 11. 21 ~ 1957. 1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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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俊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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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임실(任實)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북도 임실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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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2013)

관련 사건

  • · 임실군 둔남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3) 1883년 11월 21일 전라북도 임실군(任實郡) 지사면(只沙面) 방계리(芳磎里)에서 태어났다. 고향에서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1919년 3월 23일 전북 임실군 둔남면(屯南面, 현 오수면) 오수리(獒樹里) 장터 만세시위에 적극적으로 참가하였다. 둔남면 오수리 장터 만세시위는 서울에서 고종 장례와 격렬한 만세시위를 목도하고 돌아온 이기송(李起松)이 주도하였다. 1919년 3월 23일 오후 2시, 이기송이 오수장터에서 독립을 고취하는 연설을 하고 만세를 부를 때, 만세시위에 참여하여 약 2,000명의 시위대와 함께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오수장터를 행진하였다. 이에 오수경찰관주재소 경찰들은 주도자 이기송을 붙잡아 경찰관주재소에 가두었다. 그러자 다수의 시위대와 함께 오수주재소 및 둔남면사무소를 공격해 둔남면장 이창의(李昌儀)와 면서기 임상학(林相學)을 구타하고, 이기송을 구출한 다음 오수시장으로 돌아왔다. 이 과정에서 오수시장에서 한국인 잡화점의 깔개를 빼앗고 상품잡화를 파손하기도 하였다. 이후 수천 명의 시위대를 직접 이끌고 오수리 지역에 거주하던 일본인의 가옥과 상점을 습격해 기구와 상품을 파괴하였다. 오후 4시, 임실경찰서장 소노다 타메유키(園田爲幸)가 지휘하는 무장경찰대와 남원(南原)헌병분대의 헌병들이 오수장터로 출동해 만세시위대에게 총을 쏘아 강제로 해산시켰다. 이후 일제 군경에 시위 주도자들과 함께 붙잡혔다. 일제에 검거된 후 기소되어 1919년 5월 27일 광주지방법원 전주지청에서 이른바 소요죄로 징역 2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그 해 8월 15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3년을 받았다. 다시 상고했지만 같은 해 10월 18일 고등법원에서 상고가 기각되고 이른바 보안법 위반이 추가되어 형이 확정되면서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3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고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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