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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準永

準永

1889. 3. 17 ~ 1939. 7.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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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準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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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보은(報恩)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북도 보은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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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2)

관련 사건

  • · 보은군 탄부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1992) 1889년 3월 17일 충청북도 보은군(報恩郡) 탄부면(炭釜面) 길상리(吉祥里, 현 보은읍 길상리)에서 태어났다.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1919년 4월 11일 이창선(李昌善)·이인하(李寅夏)·김용섭(金用燮) 등과 함께 보은군 탄부면의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탄부면 만세운동은 구인리(求仁里, 현 장안면)에 사는 이창선으로부터 시작되었다. 평소 일제의 식민통치에 반대하며 독립에 대한 희망을 품고 있었다. 1919년 3월 만세운동의 전국적 확산에 호응하여 이창선은 탄부면에서도 독립을 위해 만세운동을 일으킬 것을 결심하였다. 평소 시국에 대해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교류하고 있던 이창선에게서 연락을 받고, 이인하·김용섭 등과 함께 구인리로 가서 이창선과 만났다. 이 자리에서 이창선으로부터 만세운동의 상황을 전해 듣고 탄부면에서 만세운동을 일으키자는 제안을 받았다. 이에 이인하·김용섭과 함께 만세시위를 준비하였다. 4월 11일 저녁 8시부터 동지들과 함께 구인리에 모여 만세시위를 시작하였다. 먼저 김용섭이 꽹과리를 쳐서 구인리 주민들의 주목을 끄는 동안, 이인하와 함께 마을 안을 돌면서 주민들에게 나라의 독립을 위해 만세시위에 동참할 것을 호소하였다. 이와 같은 호소에 공감한 주민 수십 명이 만세시위에 참여하자, 이창선·이인하·김용섭 등과 함께 이들을 규합하여 시위대를 조직하고, 이들을 지휘하여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면서 길상리로 이동하였다. 자신의 마을인 길상리에서도 주민들에게 만세운동의 취지를 역설하여 동참할 것을 호소하였다. 길상리에서도 수십 명의 주민들이 만세시위에 결합하였다. 이창선 등과 함께 구인리와 길상리의 주민들을 지휘하여 길상리 인근의 산 위로 올라가 만세시위를 계속하였다. 이창선의 선창에 따라 마을 주민들과 함께 큰 목소리로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는 횃불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날의 횃불만세시위 이후, 이창선·이인하·김용섭 등과 함께 일제 경찰에 붙잡혀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5월 1일 공주지방법원 청주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6월 7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다시 상고하였으나, 그해 7월 17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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