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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重善

重善

1891. 5. 5 ~ 1957. 1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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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重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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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홍성(洪城)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남도 홍성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4)

관련 사건

  • · 1919년 홍성군 금마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4) 1891년 5월 5일 충청남도 홍성군(洪城郡) 금마면(金馬面) 죽림리(竹林里)에서 태어났다. 고향에서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1919년 4월 2일 홍성군 금마면과 홍성시장에서 진행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홍성군 금마면은 서당의 훈장으로 생활하던 부평리(富平里) 민영갑(閔泳甲)의 주도로 1919년 4월 1일부터 2일간 만세운동이 전개되었다. 3월 1일 이래 전국적으로 만세운동이 일어나고 있음을 파악한 민영갑은 이재만(李載萬)·김재홍(金在洪)·최중삼(崔仲三)·조재학(趙載學)·조한원(趙漢元) 등에게 서울의 만세운동 상황을 설명하고 함께 협의하여 금마면에서의 만세시위를 계획하였다. 이들은 연극 공연이 예정되어 상당수의 주민들이 모일 것으로 예상되는 4월 1일 연극 공연장에서 만세시위를 전개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연극 공연일인 4월 1일 민영갑, 이재만 등은 가산리(佳山里) 이원교(李元交)의 자택에 설치된 임시 연극 공연장으로 일찌감치 가서 자리를 잡고 만세운동을 시작할 기회를 탐색하며 연극을 관람하였다. 이들은 연극이 끝나지 않은 오후 8시 객석에서 일제히 일어나 ‘조선독립만세’를 선창하고. 주민들에게 만세시위에 동참할 것을 역설하였다. 이에 공감한 수십 명의 주민들이 서로 호응하여 만세시위에 동참하면서 연극 공연장은 만세 시위장으로 전환되었다. 만세시위 소식을 접수하고 출동한 일제 경찰에 의해 시위대는 곧 해산되었으나, 체포된 사람은 없었다. 4월 4일에는 홍성군 금마면과 그 주변 3개 면의 20여 개소에서 봉화시위가 일어났다. 홍성경찰서 관할 일제 경찰들이 총기를 발포하여 만세시위 참가자 10여 명이 사망하고 주도 인물 5명이 체포당하였다. 현재 전하는 자료의 한계로 참여한 금마면 만세시위를 특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곧바로 홍성시장으로 출동한 일제 경찰에 붙잡혀서 금마면 만세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는 이유로 홍성경찰서로 연행되었다. 일제 경찰의 조사 과정에서 만세시위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사실이 확인되어 즉결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4월 19일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의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4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도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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