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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仲悅

仲悅

1869. 6. 18 ~ 1928. 6.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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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仲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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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익산(益山)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북도 익산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2)

관련 사건

  • · 익산군 독립선언서 배포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1992) 1869년 6월 18일 전라북도 익산군(益山郡) 북일면(北一面) 현영리(玄永里, 현 익산시 현영동)에서 태어났다. 고향 마을에서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일찍부터 천도교(天道敎)를 믿었다. 1919년 당시에는 익산군 북일면 고현리(古縣里, 현 익산시 모현동)에 소재했던 천도교 이리교구(裡里敎區)의 교구장(敎區長)을 맡고 있었다. 1919년 3월 익산·이리·강경(江景)·논산(論山)·함열(咸悅) 등 주변 지역에 독립선언서를 배포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다. 1919년 3월 1일 천도교 중앙총부로부터 파견된 인종익(印宗益)이 전주(全州) 천도교구장 김진옥(金振玉) 등에게 4,000여 장의 독립선언서를 전달하였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여러 천도교인들은 전주를 찾아가 독립선언서를 수백 장 씩 수령한 뒤 전북 지역의 여러 천도교 교구로 전하였다. 각 교구의 교구장들과 신도들은 이들 독립선언서를 다양한 방법으로 전달받은 뒤 다시 각 지역의 천도교인들을 통해 대규모로 배포하였다. 이때 익산 교구장이었던 박영진(朴永鎭)으로부터 수백 장의 독립선언서를 나눠받아 이를 배포하였다. 본래 익산군 내 황등면(黃登面)과 함열면 일대의 천도교 신자들에게 이를 배포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차츰 그 활동 범위를 넓혀 옥구(沃溝)·군산(群山)·김제(金堤)·태인(泰仁)·정읍(井邑) 등지의 여러 천도교인들에게 전달하고 또 이를 철도역 주변에 몰래 게시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일제 경찰에 의해 발각되어 붙잡혔다. 1919년 3월 28일 광주지방법원 군산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과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8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4월 14일 대구복심법원에서 항소가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석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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