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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仲和

仲和

1891. 2. 7 ~ 1978. 3.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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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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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홍성(洪城)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남도 홍성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5)

관련 사건

  • · 1919년 홍성군 금마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5) 1891년 2월 7일 충청남도 홍성군(洪城郡) 금마면(金馬面) 화양리(華陽里)에서 태어났다.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1919년 4월 홍성군 금마면에서 전개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금마면의 만세시위는 부평리(富平里)의 민영갑(閔泳甲)과 이재만(李載萬)이 주도하였다. 1919년 3월 1일 이래 서울에서 시작된 만세운동이 급속하게 확산되고 있음을 인지한 민영갑은 우선 이재만과 협의한 후, 김재홍(金在洪)·최중삼(崔仲三)·조재학(趙載學)·조한원(趙漢元) 등과 논의하여 금마면에서의 만세시위를 추진하였다. 민영갑 등은 4월 1일 가산리(佳山里) 이원교(李元交)의 집에서 마을 주민들을 대상으로 열리기로 예정된 연극 공연을 기회로 만세시위를 일으킬 계획을 세웠다. 4월 1일 오후 민영갑·이재만·김재홍·최중삼·조재학·조한원 등은 연극 관람을 가장하고 이원교의 집에 마련된 연극 공연장으로 입장하였다. 예정대로 연극이 공연되었고, 한참 공연 중이던 오후 8시 민영갑 등이 객석에서 일어나 ‘독립만세’를 선창하였다. 그리고 연극 공연 관람에 참석한 주민들에게 만세시위 참여를 호소하였다. 이에 호응한 관중 수십 명이 만세시위에 동참하여 ‘독립만세’를 외치자 연극 공연은 곧바로 만세시위로 전환되었다. 연극 공연장에서의 만세시위 소식을 접수한 일제 경찰이 출동하여 주민들을 해산시켰는데, 이에 급급하여 만세시위 주도자들을 체포하지는 않았다. 4월 4일에는 홍성군 금마면과 그 주변 3개 면의 20여 개소에서 봉화만세시위가 일어났다. 홍성경찰서 관할 일제 경찰들이 총기를 발포하여 만세시위 참여자 10여 명이 사망하고 주도 인물 5명이 붙잡혔다. 현재 전하는 자료의 한계로 참여한 금마면 만세시위를 특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금마면 만세시위에 적극 참여했다는 이유로 일제 경찰에 붙잡혀 홍성경찰서로 연행되었다. 이후 일제 경찰의 조사 과정에서 만세시위에 적극 가담했다는 이유로 즉결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4월 23일 홍성경찰서의 즉결심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아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도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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