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昶永
昶永1891. 2. 6 ~ 1945. 5. 5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장단군 진남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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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891년 2월 6일 경기도 개성군(開城郡) 송도면(松道面) 북본리(北本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이명재(李明在)이다. 여인숙을 경영하였으며, 1919년 경기도 장단군(長湍郡) 진남면(津南面) 동장리(東場里)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전국적으로 만세운동이 일어나자 경기도 장단군에서도 만세시위가 시작되었다. 3월 23일 진남면에서 110명 만세시위를 시작으로 4월 초까지 군내 각 면에서 시위가 지속되었다. 3월 24일에는 진남면 거곡리(巨谷里)에서 200명의 주민이 모여 시위를 벌였다. 이 무렵 진남면 동장리 만세시위를 준비하기로 하였다. 각지에서 벌어지는 만세운동 소식을 듣고, 같은 마을의 강규수(姜奎秀)·한기동(韓基東)·정순만(鄭順萬)·백태산(白泰山)·조진행(趙秦行)·이성구(李聲九)·양재영(梁在瑛)·정종락(鄭鍾樂)과 함께 만세시위를 계획하였다. 이들은 3월 26일 밤 성화학교(聖化學校) 뒤에서 ‘독립만세’를 외쳤다. 성화학교 학생 약 50명과 동장리·서장리(西場里) 양 마을 주민 100여 명은 만세를 외치며 300~400m 떨어져 있는 진남면사무소(津南面事務所)를 향하여 행진하였다. 시위대는 “면장을 죽이자”, “면사무소를 파괴하자”라고 소리쳤는데, 면사무소에 도착하니 면장은 도망친 뒤였다. 시위대는 분노하여 면사무소 건물을 파괴하였다. 이날 만세시위에 참여한 일로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1919년 6월 20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과 소요죄 등으로 징역 2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으나, 그해 7월 21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다시 상고하며 “조선 민족으로서 나의 행위는 정의와 인도에 따른 것이므로 범죄가 아니라”라고 주장하였지만, 같은 해 9월 27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었다. 서대문감옥에서 옥고를 겪고 1920년 9월 26일 만기 출소로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임광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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