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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彩龍

彩

1880. 9. 27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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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彩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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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 수안(遂安)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황해도 수안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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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2007)

관련 사건

  • · 수안군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07) 1880년 9월 27일 황해도 수안군(遂安郡) 수안면(遂安面) 자의리(慈儀里)에서 태어났다.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천도교인이었다. 1919년 3월 3일 수안군 수안읍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1일 독립선언을 주도했던 천도교 중앙총부는 각 지역의 천도교구에 독립선언서를 전달함으로써 만세운동의 전국적 확산을 추진하였다. 당시 천도교 중앙총부의 월보과장(月報課長)이었던 이종일(李鍾一)은 황해도 곡산군(谷山郡)에 거주하는 이경섭(李景燮)에게 독립선언서를 전달하면서 지역 단위의 만세운동을 독려하였다. 이경섭은 3월 1일 저녁 수안군의 천도교구를 방문하여 교구장 안봉하(安鳳河) 등에게 독립선언서 70부를 전달하면서 수안군 일대에서 천도교인들이 중심이 되어서 만세시위를 일으킬 것을 권유하였다. 3월 2일 안봉하를 비롯해서 수안군 천도교 인사들이 천도교구에 모여 논의한 결과 다음 날인 3월 3일 수안읍 일대에서 만세시위를 전개하기로 결의하였다. 그러나 그날 오후 일제 헌병이 천도교구를 수색하여 독립선언서를 압수하고 안봉하를 비롯한 수안군 천도교 인사들을 연행하였다. 일제 헌병의 구금을 면한 인사들이 수안군 천도교인들을 독려하여 3월 3일 만세시위를 전개하기로 재차 결의하였다. 오관옥(吳觀玉)으로부터 만세시위 참여를 권유받은 천도교 전도사 이동욱(李東郁)은 주위의 천도교인들에게 수안읍 만세시위의 참여를 독려하였다. 이때 이동욱의 권유를 받고 3월 3일 수안읍 만세시위에 참여하기로 결심하였다. 3월 3일 오전 11시경 이동욱·오관옥이 이끄는 시위대에 합류하였다. 시위대의 일원으로 조선독립을 외치면서 수안헌병분대로 진출하였다. 100여 명의 시위대는 조선이 독립되었기에 헌병분대는 퇴거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시위대가 헌병분대 경내로 진입하자, 일제 헌병은 시위대를 향해 발포하여 시위대를 해산하였다. 3월 4일 일제는 수안군 일대에 병력을 증파함으로써 시위의 확산을 차단하는 한편 수안읍 만세시위에 참여한 인사들을 체포하기 시작하였다. 이때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1심을 거쳐 1920년 11월 22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이른바 소요죄로 징역 1년 3월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7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한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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