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哲圭
哲圭1892. 7. 28 ~ 1965. 6. 27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3)
관련 사건
- · 보령군 주산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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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1993) 1892년 7월 28일 충청남도 보령군(保寧郡) 주산면(珠山面) 주야리(珠野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보령군 주산면 만세시위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주산면의 만세시위는 증산리(甑山里) 출신의 이종연(李鍾淵)의 주도로 시작되었다. 이종연은 서울 배재고등보통학교 학생으로 서울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1919년 3월 중순 독립선언서를 가지고 귀향하였다. 이종연은 지역 유림(儒林)들에게 서울의 만세운동 소식을 알리고 주산면에서도 만세시위를 일으킬 것으로 제안하였다. 이에 적극적으로 동의하여 박윤화(朴奫和)·박태현(朴台鉉)·임문호(任文鎬) 등과 함께 만세시위 준비에 참여하였다. 이종연 등과 논의하여 주민들이 많이 모이는 주산면 장터에서 만세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정하고, 장날인 4월 16일을 만세운동의 거사일로 계획하였다. 하지만 이 계획은 일제 경찰에 사전 탐지되어 좌절되었다. 이에 이종연 등과 다시 협의하여 바로 다음 날인 4월 17일 밤 결행하는 것으로 결정하였다. 거사일인 4월 17일 이종연·박윤화·임문호 등과 함께 증산리의 주렴산(珠簾山) 국수봉(國帥峯)으로 올라가서 횃불을 밝히고, 국수봉의 한가운데에 태극기를 세웠다. 그 후 이종연을 중심으로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뒤 징을 치면서 ‘대한독립만세’를 고창하였다. ‘대한독립만세’의 구호와 주변을 흔드는 징소리를 듣고, 인근의 마을 주민들이 주렴산으로 모여들기 시작하였다. 주민들은 이내 한국 독립의 호소에 공감하여 만세운동에 동참하였다. 이종연의 지휘에 따라 시위대열을 갖추고, ‘대한독립만세’를 연창하면서 웅천(熊川) 읍내를 향해 행진하였다. 시위대와 함께 선두에서 시위대열을 이끌며 ‘대한독립만세’를 고창하였다. 만세시위가 발생하자, 일제 경찰이 출동하여 만세시위대가 웅천 읍내로 진출하는 것을 막아서며 해산 명령을 내렸다. 이에 불응하고 만세시위를 지속하자, 일제 경찰은 만세시위 주도 인물을 무력으로 체포하기 시작하였다. 이때 이종연·박태현·임문호 등과 함께 현장에서 붙잡혔다. 일제 경찰에 의해 보령경찰서로 연행되어 즉결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4월 20일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고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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