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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喆淳

喆淳

1893. 4. 21 ~ 1978. 9. 20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喆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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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홍성(洪城)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남도 홍성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5)

관련 사건

  • · 1919년 홍성군 금마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5) 1893년 4월 21일 충청남도 홍성군(洪城郡) 금마면(金馬面) 송암리(松岩里)에서 태어났다.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1919년 4월 금마면에서 전개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금마면의 만세시위는 1919년 4월 1일 부평리(富平里)의 민영갑(閔泳甲)과 이재만(李載萬)을 중심으로 시작되었다. 민영갑은 전국적인 만세운동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같은 지역에 거주하는 이재만과 협의한 후, 김재홍(金在洪)·최중삼(崔仲三)·조재학(趙載學)·조한원(趙漢元) 등과 함께 만세시위를 계획하였다. 이들은 4월 1일 가산리(佳山里) 이원교(李元交)의 집에 설치된 임시 연극 공연장에서 열리는 연극 공연을 계기로 만세시위를 전개한다는 계획을 추진하였다. 4월 1일 예정대로 임시 연극 공연장에서 연극이 공연되었다. 관람자로 참석한 민영갑·이재만·김재홍·최중삼·조재학·조한원 등은 오후 8시경 객석에서 일어나 독립만세를 선창하고, 주민들에게 만세시위에 동참할 것을 호소하였다. 30여 명의 주민들이 즉시 호응하여 독립만세를 따라 외치며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연극 공연이 만세 시위장으로 변하자, 일제 경찰이 출동하여 시위대를 해산시켰다. 이후 4월 4일에는 홍성군 금마면과 그 주변 3개 면의 20여 개소에서 봉화만세시위가 일어났다. 홍성경찰서 관할 일제 경찰들이 만세시위 참여자들에게 총격을 가하여, 10여 명이 사망하고 주도 인물 5명도 붙잡혔다. 현재 전하는 자료의 한계로 참여한 금마면 만세시위를 특정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금마면 만세시위에 적극 참여했다는 이유로 일제 경찰에 붙잡혀 홍성경찰서로 연행되었고, 조사 이후 즉결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4월 19일 태(笞) 90도(度)를 받고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도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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