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봉
李春鳳1900. 2. 8 ~ 1927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2013)
관련 사건
- · 1919년 독립운동 선전문 배포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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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13) 1900년 2월 8일 서울 삼청동(三淸洞)에서 태어났다. 본적지는 서울 관훈동(寬勳洞)이며, 1919년 당시 서울 화동(花洞)에 거주하였다. 배재고등보통학교 학생 장용하(張龍河)·이봉순(李鳳舜)·김기선(金箕善), 보성고등보통학교 학생 공흥문(孔興文) 등과 함께 1919년 3월부터 4월까지 각종 독립운동 선전문을 서울 각지에 배포하는 운동을 전개하였다. 배재고등보통학교에 재학 중이던 1919년 3월 7일 같은 학교 3학년 장용하와 함께 관훈동에 거주하는 변호사 이기찬(李基燦)의 방에서 독립운동을 촉구하는 경고장 20여 장을 작성하였다. 이를 3월 7일과 8일 서울 각지에 배포하였다. 3월 15일에도 장용하·이봉순과 함께 독립운동 선전문 20장을 등사하여 배포하였다. 28일에는 장용하 외 1명과 「조선독립신문 16호」 300장을 배포하였다. 같은 해 4월 1일 서정기(徐廷基)의 집에서 장용하 등과 함께 「반도의 목탁 제1호」라는 인쇄물 100장을 인쇄하여 배포하였으며, 12일에는 「반도의 목탁 제2호」 100장, 13일에는 장용하·서정기·염형우(廉亨雨)·김기선·공흥문 등과 함께 「팔면에서 관찰한 조선의 참상」이라는 8장짜리 인쇄물 20부를 인쇄하여 서울의 각 가구에 배포하였다. 4월 22일에는 「반도의 목탁 제3호」 100장, 4월 25일에는 「반도의 목탁 특별호」 70장을 배포하였으나, 이후 붙잡혔다. 1919년 5월 12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출판법과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3년을 받았다. 1919년 7월 10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원판결이 취소되고 징역 2년을 받았다. 1919년 9월 22일 고등법원에서 상고가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3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송태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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