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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快德

快德

1900. 6. 1 ~ 1975. 6.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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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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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울산(蔚山)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울산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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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5)

관련 사건

  • · 울산군 온양면(4.8) 3.1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1995) 1900년 6월 1일 경상남도 울산군(蔚山郡) 온양면(溫陽面) 덕신리(德新里, 현 울산광역시 울주군 온산읍 덕신리)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학성(鶴城, 울산의 옛 이름)이며, 이명은 이선걸(李善杰)이다. 1919년 당시 농업에 종사하였고, 4월 8일 울산군 온양면 남창리(南倉里) 시장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1919년 3월 웅촌면(熊村面, 현 울산광역시 울주군) 석천리(石川里) 이재락(李在洛)이 고종의 장례식에 참례하였다. 그 과정에서 서울의 만세운동을 보고 돌아와 그 소식을 지역에 전하였다. 이에 한학자 이용중(李龍中)의 문하생으로 함께 수학하던 이수락(李壽洛)·이희계(李希季)·이용락(李龍洛) 등과 만세운동을 일으키기로 결의하였다. 장소는 온양장이 열리는 남창리로 정하고, 날짜는 4월 8일로 예정하였다. 거사 전날인 4월 7일 밤 이용락의 집에 모여 태극기를 만들었다. 1919년 4월 8일 오후 4시 장터가 폐장에 들어가자 동료들과 함께 태극기를 군중에게 나누어주며 장터 한복판에 서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수백 명의 군중이 갑자기 모여들면서 태극기를 흔들며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당황한 일제 군경이 공포탄을 쏘며 시위대를 해산하는 과정에서 경찰에 붙잡혔다. 1919년 4월 24일 부산지방법원 울산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한 결과, 같은 해 5월 17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6월로 감형되었다. 무죄를 주장하며 상고하였으나, 그해 6월 28일 고등법원에서 최종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김남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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