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台仁
台仁1867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2006)
관련 사건
- ·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06) 황해도 수안군(遂安郡) 대천면(大千面) 시리원(柴里院) 출신이다. 정확한 생몰연대는 확인되지 않으나, 1920년 당시 54세로 파악되었으며, 12월 13일생이었기에 1867년생인 것으로 추정된다. 농업에 종사하다 1919년 수안면 만세시위에 참여하여 징역형을 받았다. 1919년 3월 3일 수안면 만세운동은 이 지역의 천도교 교도들에 의해 주도되었다. 3월 1일 천도교 중앙총부에서 전달한 독립선언서가 같은 날 저녁에 수안천도교구에 전달되어, 천도교도를 중심으로 3월 3일의 시위가 기획된 것이었다. 1919년 3월 3일 새벽 6시부터 130여 명의 사람들이 모여 수안헌병분대에서 헌병분대의 퇴거를 요구하는 시위를 시작했다. 오전 11시 경부터 시위대에 참여해, 수안헌병분대로 향했다. 조선이 독립했으니 헌병분대는 즉각 퇴거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오후 1시 경부터는 새로 결합한 시위대와 함께 수안헌병분대 경내로 진입을 시도하다, 헌병의 발포가 시작되어 해산하였다. 이튿날인 3월 4일 이후 결국 붙잡혀 이른바 내란죄로 재판을 받았다. 1920년 3월 22일 고등법원에서 내란죄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판결을 받았다. 그 해 7월 3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 소요죄, 저택침입의 죄목을 적용받았다. 11월 22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최종적으로 소요죄만 적용받아 징역 1년 3월을 선고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6년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한승훈⋮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