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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學淳

學淳

1876. 5. 24 ~ 1943. 1.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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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學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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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홍성(洪城)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남도 홍성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5)

관련 사건

  • · 1919년 홍성군 금마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5) 1876년 5월 24일 충청남도 홍성군(洪城郡) 금마면(金馬面) 송강리(松江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홍성군 금마면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홍성군 금마면 만세운동은 부평리(富平里)의 민영갑(閔泳甲)과 이재만(李載萬)을 중심으로 김재홍(金在洪)·최중삼(崔仲三)·조재학(趙載學)·조한원(趙漢元)이 동지로 참여하면서 구체화되었다. 이들은 4월 1일 가산리(佳山里) 이원교(李元交)의 집에서 연극 공연이 열리는 것을 이용하여 만세운동을 전개할 것을 계획하였다. 예정대로 연극이 시작되었고, 민영갑 등은 기회를 엿보다 오후 8시 경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면서 만세시위를 시작하였다. 이에 30여 명의 주민들이 적극적으로 호응하여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며 동참하였다. 이날의 만세시위는 체포자 없이 일제 경찰에 의해 해산되는 것으로 끝났다. 4월 4일에는 홍성군 금마면과 그 주변 3개 면의 20여 개소에서 봉화시위가 일어났다. 홍성경찰서 관할 일본 경찰들이 총기를 발포하여 만세시위 참가자 10여명이 사망하고 주도 인물 5명이 체포당하였다. 현재 전하는 자료의 한계로 참여한 금마면 만세시위를 특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금마면 만세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는 이유로 일제 경찰에 붙잡혀 홍성경찰서로 연행되었다. 일제 경찰의 조사결과, 즉결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4월 23일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고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정부는 200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도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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