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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洪植

洪植

1886. 9. 2 ~ 1935. 3.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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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洪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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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김포(金浦)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기도 김포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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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2)

관련 사건

  • · 1919년 연천군 중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2) 1886년 9월 2일 경기도 김포군(金浦郡) 양촌면(陽村面) 구래리(九來里)에서 태어났다. 이후 연천군(漣川郡) 중면(中面) 적거리(赤巨里)로 이주하였다. 지역에서 서당의 훈장으로 생활하였다. 같은 마을에 거주하고 있던 나용기(羅龍基)와 함께 1919년 4월 1일 중면의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중면 삼곶리의 만세운동은 적거리에 거주하던 나용기를 중심으로 시작되었다. 3월 1일 이래 전국적으로 만세운동이 확산되는 사실을 파악한 나용기는 이에 적극적으로 찬성하여 중면에서의 만세운동을 결의하였다. 3월 31일 나용기에게 전국적인 만세운동에 대한 내용을 전달받았고, 그 자리에서 곧바로 찬동하여 동지로 결합하였다. 나용기와 함께 논의하여 4월 1일을 만세시위의 거사일로 결정하고, 중면 각지의 주민들에게 호소하여 면사무소가 위치한 삼곶리에서 만세시위를 전개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러한 계획에 따라 구체적으로 만세시위의 준비에 착수하여 “4월 1일 조선의 독립을 위한 조선독립만세를 외칠 것이니, 내일 오전 7시까지 세얄골에 집합하라”는 내용의 격문 6통을 작성하여, 이것을 한씨동(韓氏童)·나성돈(羅聖敦)·나개동(羅開童) 등을 통해 중면의 마을 구장에게 전달하도록 하였다. 이후 나용기와 함께 만세시위에서 사용할 대형 태극기를 옥양목으로 제작하였다. 다음날인 4월 1일 오전 7시 경, 만세시위에 대한 격문의 내용을 전달받은 400여 명의 주민들이 중면의 각지에서 삼곶리로 집결하였다. 나용기와 함께 대형 태극기를 받들고 주민들 앞에 나서 ‘조선독립만세’를 선창하였다. 이에 주민들이 호응하여 일제히 큰 목소리로 ‘조선독립만세’를 외쳤다. 나용기와 함께 이들을 지휘하여 시위대를 갖추었다. 선두에 서서 대형 태극기를 앞세우고, ‘조선독립만세’를 연창하며 연천(漣川) 읍내를 향해 행진하였다. 시위대가 읍내 근처에 다다랐을 때, 만세시위 발생 소식을 보고받은 일제 헌병대가 출동하여 앞을 가로막고 즉시 해산을 명령하였다. 이에 나용기와 함께 일제 헌병대의 해산 명령을 거부하고,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면서 행진을 계속했으나, 총칼로 위협하는 일제 헌병대의 무력 진압에 의해 시위대는 해산되었다. 이 과정에서 나용기와 함께 일제 헌병대에 붙잡혀서 만세시위를 주도했다는 혐의로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4월 29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을 이유로 태(笞) 90도(度)를 받아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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