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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化伯

化伯

1885. 5. 23 ~ 1941. 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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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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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장수(長水)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북도 장수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5)

관련 사건

  • · 산서면 동화리 장터 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1995) 1885년 5월 23일 전라북도 장수군(長水郡) 산서면(山西面) 쌍계리(雙溪里)에서 태어났다. 고향 마을에서 여인숙(旅人宿)을 운영하며 생계를 꾸렸다. 1919년 3월 19일 산서면의 동화리(桐花里) 일대에서 일어난 만세시위에 참가하였다. 장수군에 서울에서의 만세시위 소식이 전해진 것은 시위가 일어난 바로 다음 날인 3월 2일로, 이날 장수읍내의 천도교(天道敎) 교구실(敎區室)에서는 서울에서 독립선언서 1백여 장을 전달받았다. 이에 교구장(敎區長)이었던 박영춘(朴永春)을 비롯한 장수읍내의 천도교 신자들은 읍내 각 마을 주민들에게 독립선언서를 돌리거나 면사무소의 게시판에 몰래 선언서를 게시하는 등의 활동을 하며 만세시위의 정당성을 알리고 주민들에게 동참할 것을 권유하였다. 이때 지사면(只沙面)에 살던 유생(儒生)인 박정주(朴政柱)는 이 소식을 접하고 같은 마을에 살던 안성섭(安成燮) 등과 함께 지사면과 인접한 마을인 산서면(山西面) 동화리의 장날을 기해 시위를 일으키기로 하였다. 한편, 같은 마을에 살던 정호현(丁豪鉉) 등에게 시위 계획을 듣고 이에 동참하여 장대에 높이 매단 태극기(太極旗) 2장 등을 준비하였다. 거사 당일인 3월 19일 정호현·박정주 등과 함께 계획대로 장터에서 만세시위를 벌이고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때 시위 군중은 약 200명으로 불어났다. 시위 도중 일제 경찰이 출동해 박정주 등을 체포해 가자, 안성섭·이길선(李吉善) 등과 함께 시위 군중을 이끌고 주재소로 달려가 박정주를 풀어줄 것을 요구하기도 하였다. 그 후 일제 경찰에 의해 시위대가 강제 해산되는 과정에서 붙잡혔다. 1919년 5월 2일 광주지방법원 남원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6월 13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고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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