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會明
會明1863. 9. 28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09)
관련 사건
- · 장흥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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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포장(2009) 1863년 9월 28일 경기도 양주군(楊州郡) 장흥면(長興面) 교현리(橋峴里)에서 태어났다. 직업은 농업, 이명은 이회건(李會建)이다. 1919년 3월 28~29일 경기도 양주군 장흥면 교현리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서울에서 일어난 만세운동 소식을 듣고 이에 찬동하여 자신의 고향에서도 만세운동을 전개하고자 하였다. 3월 28일 오전 9시경 장흥면 교현리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박소사(朴召史)의 집 앞에서 마을 주민 30여 명을 규합하여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는 등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박소사 집 앞에서 오전 9시부터 시작된 만세운동은 늦은 밤이 되어서야 해산하기에 이르렀다. 이 때 해산하는 시위 군중을 향해 “내일도 역시 조선독립만세를 부를 것이니 집합하라”고 당부하였다. 3월 29일 이른 아침부터 박소사의 집 앞에 시위 군중이 모이기 시작하여 어느덧 50여 명에 이르렀다. 시위 군중이 어느 정도 규모를 갖추자 선두에 서서 전날 만들어 놓은 태극기를 흔들면서 장흥면사무소(長興面事務所)로 행진하기 시작하였다. 장흥면사무소에 도착하자 장흥면 울대리(鬱垈里)와 부곡리(釜谷里)의 주민들까지 합세하여 시위 군중의 숫자는 무려 300여 명에 이르게 되었다. 이 때 시위 군중의 앞과 뒤를 오가면서 만세운동을 격려하였고 이로 인해 만세운동의 열기가 더욱 고조되었다. 이후 헌병대(憲兵隊)가 출동하여 시위 군중에 대한 해산을 시도하였으나 이에 격렬히 저항하였으며, 나아가 헌병들을 폭행하고 총기를 탈취하려고 시도하였다. 시위 군중의 격렬한 저항에 놀란 헌병대는 시위 군중을 향해 무차별 발포하기 시작하였고, 그 결과 3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헌병대에 의해 시위 군중이 강제로 진압되는 과정 속에서 만세운동의 주도자로 붙잡혔다. 1919년 5월 22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았다. 이후 항소하였으나 6월 25일 경성복심법원과 8월 14일 고등법원에서 각각 기각되었다. 서대문감옥에 수감되어 옥고를 겪다가 8개월 후인 1920년 4월 28일 ‘은면(恩免)’을 받아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9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노성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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