林武京
武京1861. 11. 17 ~ 1937. 9. 1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2)
관련 사건
- · 1919년 광주군 오포면
- · 경안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2) 1861년 11월 17일 경기도 광주군(廣州郡) 오포면(五浦面) 문형리(文衡里)에서 태어났다.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1919년 3월 28일 광주군 오포면과 경안면(京安面)에서 전개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광주군의 만세운동은 3월 26일부터 시작되어 3월 28일 군청 소재지와 면사무소, 헌병주재소 등을 중심으로 집중적으로 전개되었다. 3월 28일 오포면 각 마을별로 시작된 만세시위는 군청 소재지인 경안면으로 확대되었다. 이 대규모의 만세시위는 광주군 지역에서 거행된 만세운동 가운데 가장 격렬하게 전개되었다. 3월 28일 오전 1시경 김인택(金仁澤)과 함께 만세시위에 공감해 동참한 문형리 주민 30여 명을 이끌고 뒷동산에 올라가 횃불을 밝히고 ‘독립만세’를 외쳤다. 고산리(高山里)에서도 비슷한 시각에 추자리(楸自里)의 정제신(鄭濟莘)이 고산리 주민 40여 명을 이끌고 뒷산으로 올라가 횃불을 밝히고 ‘독립만세’를 고창하였다. 새벽에 마을별로 횃불만세시위를 전개한 오포면 주민들은 휴식을 취한 뒤, 오전 9시경 추자리에 위치한 오포면사무소 앞으로 집결하였다. 김인택과 함께 문형리의 주민들을 이끌고 면사무소에 도착하였다. 이후 고산리 주민들과 유면영(柳冕永)이 지휘하는 양벌리(陽伐里) 주민들이 합세하면서 시위대의 규모는 600여 명으로 확대되었다. 만세시위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증가하면서 오전 11시경 시위대는 1,500여 명으로 불어났다. 그러자 유면영·정제신·김인택 등과 함께 오포면의 시위대를 지휘해 경안면에 위치한 광주군청(廣州郡廳)으로 이동하면서 ‘독립만세’를 외쳤다. 오후 2시경 유면영·정제화 등과 함께 경안면에 도착한 시위대를 지휘해 곳곳을 행진하면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그리고 군청 앞으로 이동해 군수와 군청 직원들에게 만세시위에 참여할 것을 요구하면서, 군수에게 “한국의 독립을 승인한다는 내용에 날인하라”고 압박하였다. 기세가 오른 시위대의 일부가 군청과 광주우편소를 공격하기 시작하였고, 돌을 던져 건물 유리창 다수를 파괴하였다. 그러자 일제 헌병들이 시위대를 향해 총을 겨누며 군청과 우편소에 대한 공격을 저지하였다. 하지만 시위대가 군청 안으로 밀고 들어갔고, 일제 헌병들은 시위대를 향해 총격을 가하기 시작하였다. 이로 인해 사망자 6명과 부상자 10여 명이 발생하면서 결국 시위대와 함께 해산하였다. 이 일로 붙잡혀 1919년 5월 13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월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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