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林汎燮

汎燮

1898. 6. 5 ~ 1973. 3.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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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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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안동(安東)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안동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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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1919년 안동군 임하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98년 6월 5일 경상북도 안동군(安東郡) 임하면(臨河面) 고곡동(古谷洞)에서 태어났고, 이후 임하면 금소동(琴韶洞)으로 이주하였다. 본관은 예천(醴泉)이다. 이명으로 한자를 달리한 임범섭(林範燮)을 썼다. 1919년 3월 21일 임하면 금소동·신덕동(新德洞)에서 전개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1919년 같은 마을에 사는 임득연(林得淵), 고곡동에 사는 임찬일(林贊逸)과 함께 고종의 인산(因山)에 참례(參禮)하기 위하여 상경했다가 만세운동을 직접 목격하였다. 동행한 임찬일은 만세시위에 직접 참여한 후, 독립선언서도 가지고 돌아와서 지역에 만세운동 소식을 전하며 마을 청년들을 규합하였다. 이때 임득연·노말수(盧末守)·박유석(朴有石)·임동숙(林東淑)·유북실(柳北實)·임춘섭(林春燮) 등과 함께 만세시위를 계획하였고, 3월 16일 길안면(吉安面) 장날에 거사를 벌이기로 하였다. 하지만 참여자가 적어 거사일을 3월 21일로 연기하고, 장소도 금소동으로 변경하였다. 3월 21일 오후 6시경 300여 명의 주민들이 모이자 주도자들과 함께 ‘대한독립만세’를 선창하고 만세시위를 시작하였다. ‘독립만세’를 연호하는 시위대를 이끌고 읍내인 신덕동으로 이동하였다. 오후 9시경 신덕경찰관주재소에 도착한 시위대와 함께 그곳을 에워싸고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에 놀란 일제 경찰들이 시위대를 해산시키기 위해 무차별적으로 총격을 가해 여러 명이 사망하였다. 밤 11시경 잠시 물러났던 시위대와 더불어 다시 주재소로 가서 사상자 발생에 대해 거세게 항의하며 돌을 던져 출입문과 창문 등을 파괴하였다. 시위대를 이끌고 주재소 안으로 들어가 벽을 허물고 기물을 부수며 공문서도 파기하였다. 이어서 면사무소로 이동해 돌을 던져 문과 창문·가스등을 파괴하고, 사무소로 들어가 의자와 책상 등의 기물을 부수고 문서를 파기하였다. 이후 시위대와 함께 자진 해산하였다. 이 일로 붙잡혀 1919년 5월 19일 대구지방법원으로 이감되었고, 그해 5월 29일 예심을 받았다. 같은 해 7월 4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과 소요죄로 징역 1년 6월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정상우⋮ ⋮정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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