林奉春
奉春1899. 5. 29 ~ 1971. 3. 10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5)
관련 사건
- · 매곡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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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5) 1899년 5월 29일 충청북도 영동군(永同郡) 매곡면(梅谷面) 노천리(老川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임찬규(林燦圭)·임진규(林珍圭)이다. 고향에서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1919년 4월 매곡면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매곡면 만세시위는 안광득(安光得)이 서울에서 만세시위에 참여한 뒤, 독립선언서를 가지고 귀향하면서 시작되었다. 안광득이 고향에 와서 만세운동 소식을 알리고 만세운동 계획을 구체화 하는 과정에서 소식을 전해 듣고 참여하기로 하였다. 이들은 거사일을 밤나무 묘목장의 주민 동원 작업이 예정된 4월 2일로 정하고 안준(安準)·김용선(金容善)·신상희(申相熙)·장복철(張復哲)·남도학(南道學) 등과 함께 독립선언서를 필사하고 태극기 400여 본을 제작하였다. 4월 2일 오전 동료들과 함께 밤나무 묘목장으로 향하여 100여 명의 주민들 앞에서 안광득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하는 것을 시작으로 만세시위에 참여할 것을 호소하였다. 안광득·안준과 함께 시위대를 이끌고 노천리 면사무소 앞으로 가서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는 만세시위를 전개하고, 시위대의 위세를 앞세워 면장과 면직원들까지 ‘조선독립만세’를 외치게 하여 만세시위에 참여시켰다. 이후 시위대를 이끌고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면서 인근의 황간면(黃澗面)으로 행진하였다. 장날이었던 황간 장터로 가서 장터에 모인 많은 주민들에게 시위 참여를 호소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황간장터는 만세시위를 예상한 일제 경찰에 의해 이미 철시되었기에, 더 이상 만세시위를 진행하지 못하고 해산하였다. 이날 만세운동 소식이 매곡면 전체로 전파되어 4월 3일 매곡면의 곳곳에서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 4월 4일 오전 11시 면사무소 앞에서 다시 만세시위를 재개하였다. 이날 만세시위에는 지난 만세시위의 영향으로 800여 명의 주민이 면사무소 앞에 집결하였다. 2일의 만세시위 때와 같이 면장 이하 면사무소의 직원들, 이 지역에 거주하는 일본인까지 만세시위에 참여시켰다. 매곡면에서 연일 만세시위가 전개되자 일제는 추풍령(秋風嶺)에 주둔하고 있던 헌병분견대 및 수비대를 매곡면으로 파견하여 무력으로 만세시위를 탄압하였다. 이 과정에서 일제 헌병대에 의해 만세시위의 중심인물로 지목되어 안광득·남도학과 함께 붙잡혀 압송되었다. 1919년 4월 23일 공주지방법원 대전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2월을 받았다. 판결에 불복하여 즉시 항소하였으나, 그해 5월 31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재차 상고하였으나, 같은 해 7월 5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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