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林潤恒

潤恒

1895. 11. 5 ~ 1972. 7.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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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林潤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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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홍천(洪川)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강원도 홍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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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7)

관련 사건

  • · 홍천군 홍천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7) 1895년 11월 5일 강원도 홍천군(洪川郡) 북방면(北方面) 성동(城洞)에서 태어났다. 이후 홍천면(洪川面) 신장대리(新場垈里)로 이주하였다. 이명은 임준홍(林準弘)과 임준국(林準局)을 썼다. 기독교 감리교인이다. 1919년 4월 1일 홍천군 홍천면에서 일어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홍천군 만세시위는 차봉철(車奉哲)·서상우(徐相祐)·오창섭(吳昌燮)의 주도로 시작되었다. 차봉철이 고종의 장례식에 참례하기 위하여 서울에 갔다가 만세운동을 직접 목격하고 귀향하여, 서상우와 오창섭을 만나 만세운동에 뜻을 모으게 되었다. 세 사람은 홍천면에 장이 서는 1919년 4월 1일에 시위를 일으키기로 결의하였다. 차봉철이 집으로 불러 시위 계획을 알리자, 그 자리에서 동참을 약속하였다. 김기현(金基鉉)·김수완(金壽完)·장일규(張逸奎) 등 감리교인들과 시위 때 쓸 태극기를 만들고, 교인들로 하여금 주민들을 동원하게 하였다. 거사 하루 전날에는 고익진(高翼振)의 집 앞 도로에서 주도자들과 만나 결의를 다졌다. 거사 당일 아침 주도자들과 함께 태극기를 가슴에 품고 장터로 향하였다. 장꾼과 주민들에게 태극기를 나눠주며 시위 계획을 알리고 동참을 권유하였다. 오후 1시경 오창섭·김영옥(金永玉)이 큰 태극기를 휘날리며 장터로 들어오자, 주민들을 이끌고 합류하였다. 다른 주도자들과 더불어 군중 앞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자, 시위 군중과 장꾼들도 일제히 ‘독립만세’를 불렀다. 200여 명의 시위대를 이끌고 장터를 행진하였으며, 이어서 군청과 면사무소에서도 ‘대한독립만세’를 연호하였다. 많은 사람들의 참여로 시위 군중 수는 어느덧 500여 명을 헤아리게 되었다. 늦은 오후 만세운동 소식을 접한 일제는 헌병과 춘천수비대를 현장에 급파하였다. 수비대가 시위대의 앞을 막았지만, 군중은 아랑곳하지 않고 헌병분견소로 나아갔다. 시위대가 멈추지 않자 헌병들은 무력으로 시위대를 해산시켰다. 이때 주도자 32명과 함께 붙잡혔다. 1919년 6월 12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7월 23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재차 상고하였지만, 그해 10월 2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서대문감옥에서 옥고를 겪었다. 이듬해 4월 2일에 만기 출옥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정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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