林浩逸
浩逸1890. 8. 8 ~ 1919. 3. 21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관련 사건
- · 1919년 안동군 임하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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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1991) 1890년 8월 8일 경상북도 안동군(安東郡) 임하면(臨河面) 고곡동(古谷洞)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울진(蔚珍)이다. 자는 국윤(國允)이고, 호는 소은(昭隱)이며, 이명은 임무열(林武烈)이다. 1919년 3월 21일 임하면 금소동(琴韶洞)과 신덕동(新德洞)에서 전개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가 일제의 총격에 희생되었다. 1919년 3월 21일 금소동(琴韶洞)과 신덕동(新德洞)에서 거행된 만세시위는 같은 마을에 거주하던 임찬일(林贊逸)로부터 시작되었다. 임찬일은 금소동 금양의숙(錦陽義塾)에서 수학하다가 고종 인산(因山)에 참여하기 위해 상경했다가 만세운동을 직접 경험하고 내려와 만세시위를 계획하였다. 거사 계획에 노말수(盧末守)·박유석(朴有石)·임동숙(林東淑)·유북실(柳北實)·임춘섭(林春燮) 등 다수의 사람들이 참여하면서 금소동·신덕동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 임하면에서도 만세시위가 거행된다는 소식을 듣고 동참하기로 결심하고, 3월 21일 거사 장소인 금소동으로 향하였다. 오후 6시경 금소동에는 임찬일·노말수·박유석 등 주도자들과 함께 마을 주민 100여 명이 모여 있었다. 주도자들이 먼저 만세를 부르자 모여 있던 사람들과 함께 소리 높여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주도자들이 시위대를 이끌고 주재소로 향하였다. 시위대가 이동하는 과정에서 많은 주민들이 동참하면서 300여 명 규모로 확대되었다. 저녁 9시경 신덕동 주재소에 도착한 시위대와 함께 그곳을 에워싸고 독립만세를 계속해서 불렀다. 그러자 주재소에 있던 순사 1명과 순사보 2명이 만세소리에 놀라 시위대를 해산시키기 위해 사람들을 향해 무차별적으로 총격을 가하기 시작하였다. 그 결과 사망자 2~3명과 여러 명의 부상자가 발생하였고, 시위대는 일제 경찰의 강경 대응으로 잠시 물러났다. 하지만 사망자와 부상자 발생에 분노한 시위대는 다시 주재소로 몰려가 출입문과 창문 등을 모두 파괴하고 공문서도 파기하였다. 이어서 면사무소로 이동한 시위대는 건물의 벽과 기물 등을 파괴하였고, 문서도 파기하였다. 이후 시위대는 자진해서 해산하였으나, 일제 경찰의 검거 작전으로 주도자 대부분이 붙잡혀서 옥고를 겪었다. 이 만세시위에서 일제 경찰의 총격에 맞아 현장에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1980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정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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