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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선기

張善基

1871. 8. 5 ~ 1933. 3.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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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장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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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홍성(洪城)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남도 홍성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5)

관련 사건

  • · 1919년 홍성군 금마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5) 1871년 8월 5일 충청남도 홍성군(洪城郡) 금마면(金馬面) 월암리(月岩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홍성군 금마면에서 전개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가 고초를 겪었다. 1919년 3월 1일 서울 등에서 시작된 만세운동에 대한 소식은 홍성군 금마면에도 전달되었다. 금마면의 만세시위는 부평리(富平里)에서 서당 훈장을 하던 민영갑(閔泳甲)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민영갑은 전국 각지에서 만세운동이 전개되고 있음을 파악하고, 평소 시국에 대해 동일한 의견을 가지고 있던 이재만(李載萬)·김재홍(金在洪)·최중삼(崔仲三)·조재학(趙載學)·조한원(趙漢元) 등과 함께 금마면 만세시위를 계획하였다. 이들은 가산리(佳山里) 이원교(李元交)의 집에 설치된 임시 연극공연장에서 주민들을 대상으로 연극 공연이 예정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주민들이 많이 모이는 4월 1일을 거사일로 정하고 만세시위를 거행하기로 계획하였다. 거사 당일인 4월 1일 오후 민영갑·이재만 등은 관객으로 가장하고 임시 연극공연장에 참석하였다. 기회를 노리고 있던 민영갑·이재만·김재홍·최중삼·조재학·조한원 등은 연극 공연이 한참 진행되던 오후 8시경 객석에서 일어나 ‘독립만세’를 선창하고, 주민들의 참여를 권유하였다. 이들의 호소를 듣고 공감한 주민 수십 명이 동참해 함께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에 연극 공연장은 만세시위로 흥분된 분위기였지만, 곧이어 출동한 일제 경찰에 의해 강제로 해산되었다. 이후 4월 4일에는 홍성군 금마면과 그 주변 3개 면의 20여 개소에서 봉화만세시위가 일어났다. 홍성경찰서 관할 일제 경찰들이 만세시위 참여자들에게 총격을 가해, 10여 명이 사망하고 주도 인물 5명도 붙잡혔다. 현재 전하는 자료의 한계로 참여한 금마면 만세시위를 특정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금마면 만세시위에 적극 참여했다는 이유로 일제 경찰에 붙잡혀 홍성경찰서로 연행되었고, 조사 이후 즉결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4월 23일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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